고용노동부가 지난 23일 ‘2016년 임금·단체교섭 지도방향’(임단협 지도방안)을 발표했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해 중점사업장을 선정해 지도하겠다는 것이다. 4대 핵심과제는 △상위 10% 임금인상 자제 △경직된 연공서열 타파 △공정인사 확립 △취약근로자 보호다. 2대 지침이 단협에 반영되도록 지침으로 강제하겠다는 복안이다. 월권행위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부 임단협 지침 어떻게 봐야 할까.


후진적 노사관계 만든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
 

▲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임금체계나 임금피크제 도입 등은 교섭을 통해서 노사가 알아서 풀어야 할 노사자치 영역의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부르는 정책을 도입·시행하기 위해 행정지침 같은 손쉬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노사 문제에 개입하려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개입 이후 사후에 어떻게 정책을 수습하고, 파장을 정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만약 정권이 바뀐 뒤 노동정책이 변화하면 지금 개입하려는 정책들을 어떻게 주워 담을 것인가.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정책이 아주 정의로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민간시장의 임금체계를 바꾸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노사관계에 정부가 간섭하고 개입하는 일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건이다.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정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면서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형태로 전락해 버렸다. 사용자는 노조와 대화하지 않고 자기들의 소원을 정부에 기대 해결하려고 한다. 노동부의 이번 지도지침도 노사관계를 후진적으로 만드는 단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임단협 지도·지원은 정부의 책무
 

▲ 임서정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정부가 발표한 임단협 지도방향에 대해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명백하게 노사자율교섭과 노사자치주의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일부 주장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임단협 지도방향은 노사의 자치와 자율교섭을 침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우선 정부는 노사관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참여와 협력을 통해 개선되도록 유도해 나갈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한 행정지도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노사자율·자치라는 명목하에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방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임단협 지도방향은 9·15 노사정 대타협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은 수차례에 걸쳐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이다.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이 현장에서 실천되도록 지도하겠다는 것이므로 노사자율 침해라 할 수 없다.

임단협 교섭과 임금체계 개편 등의 내용들은 노사가 결정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지 정부가 강제할 수도 없다. 정부는 원활하고 바람직한 임단협 교섭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을 포함한 지원제도와 연계해 주며, 위법·불합리한 사항들을 미리 알려 임단협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장년 고용안정, 현장의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임단협 지도·지원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이다.


수천억원대 소송 부른 정부, 또 노사관계 개입?
 

▲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임단협 지도방향은 명백한 노사관계 개입이자 침해다. 노사자치주의를 훼손하고 자율교섭을 방해해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과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도록 지침을 내려 노사 간 수천억원대 소송을 촉발한 주체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침은 번번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반성은 전혀 없이 또다시 노사관계 개입지침을 내려보내다니 어이가 없다. 모법을 위반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근로자를 위한 제도처럼 포장해 강행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언어도단이 따로 없다.

정부는 노사자치주의를 침해하고 노사관계를 해치는 임단협 지도방향과 2대 지침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산업 현장에 만연한 불법·위법 행위를 단속하는 것이다.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과 불법파견이 산업현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은 가만 놔두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일에 간섭이나 하겠다니 어찌 반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정부는 이번 지도방향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의 자녀 같은 가족 특별채용도 문제 삼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다치거나 숨진 분들, 즉 국가유공자에 대해서도 공무원 채용시 특별 가산점을 주지 않는가. 국가는 되고 민간기업은 안 된다는 논리는 또 어디에서 나온 건가. 산업재해는 한 가족의 인생을 낭떠러지에 밀어 넣을 수도 있는 사건이다. 열심히 일하다 다쳤을 때 기업에서 최소한의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면 열정을 다 바쳐 일할 노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협-취업규칙 개악 전도사 자처한 노동부
 

▲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정부가 발표한 임단협 지도방향은 사용자에게 관대하고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개악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구나 정부 본연의 임무와 중립성을 팽개친 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개악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범죄 예고까지 담았다. 정부가 사용자의 노무관리 대행사가 됐나 싶어 분노를 넘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나라의 녹을 먹으며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정부 주요 대책으로 발표된 ‘직무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유연화’와 소위 ‘공정인사 확산’은 사용자의 오랜 숙원이자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의 핵심이다. 지금도 전국의 사업장 곳곳에서 정부의 불법 2대 행정지침을 이유로 취업규칙·단체협약 개악안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 피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고용을 확대한다는 구상 역시 그간 사용자들이 단기 인턴 등 비정규 일자리만 늘려왔던 전례에 비춰볼 때, 실효는커녕 오히려 사용자에게 면죄부만 주는 격이다. 그런데도 노동유연화 정책이 취약근로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러니 노동개악을 두고 ‘자본의 청부 입법’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 아니겠나.


법적인 의무 지키려는 노력으로 봐야
 

▲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

고용노동부가 임단협 지도방향을 지방관서에 내려보냈다. 임금체계 개편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0세 정년 의무화를 규정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는 "정년을 연장한 기업과 노조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이번 대책은 법에 명시된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대책이 정부가 개별기업을 강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60세 정년 의무화와 임금체계 개편은 모두 법에 명시된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세 정년 의무화의 혜택은 받고 임금체계 개편 의무는 외면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위한 노동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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