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산하 지하철 두 공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3개 노조가 25일부터 29일까지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안건은 지난 20일 서울시·두 공사·3개 노조가 마련한 잠정합의안이다. 노사정은 내년에 출범하는 서울지하철통합공사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노사정은 통합공사 조례와 정관에 노동이사제를 명시하고, 경영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노동이사는 2명, 경영협의회는 30여명 규모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른바 ‘참여형 노사관계 모델’이다. 조합원 찬반투표는 노사정이 마련한 모델을 승인받는 첫 번째 관문이다.

노동이사제는 이미 뜨거운 감자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선거에서 쟁점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일부 언론은 노사정이 합의한 사안임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프로젝트”라고 폄훼했다. 또 “유럽에서는 소수 국가만 도입했고, 우리나라 노사관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이사제보다 현행법으로 보장된 노사협의회제를 활용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논쟁은 바람직하다. 새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충분한 토론을 벌인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사실관계는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 언론과 경제단체의 비난은 도를 넘었다.

노동이사제는 한물간 제도일까. 유럽에선 소수 국가만 도입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럽연합은 '기업의 사회적·경제적 결정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고 협의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기본권 헌장(제27~28조)에 명시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2001년 유럽회사법 채택에 따라 노동자의 경영참여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국가마다 다르긴 하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가운데 18개 국가는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등 경영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즉 노동자 대표는 기업의 이사회 또는 감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바로 노동이사제다.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 경영의 한 주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경영참여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2011년 세계경제포럼은 “노동자 경영참여는 독일의 위기 완화와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노동이사제는 낡은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보편화된 제도다.

혹자는 노사협의회제도를 활용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주로 정부에서 이런 제안을 한다. 노사협의회법은 80년 제정된 이래 97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로 개정됐다. 3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 노사협의회는 3개월마다 1회씩 열도록 돼 있다. 노사협의회는 경영정보 공개와 임금·근로조건 관한 사항 협의, 직업훈련·복지·고충처리 사항을 안건으로 다룬다. 노동자 경영참여의 일환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노사협의회는 실효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유노조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는 유명무실하다. 단체교섭을 위한 사전 협의기구로 활용되는 탓이다.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다. 무노조 사업장은 형식적으로 노사협의회를 한다. 사용자가 노무관리 보조기구로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에게 노사협의회제도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노사협의제도는 수술대에 올랐다. 2013년 노동부는 사내하청 노동자 대표가 포함되는 ‘사업장협의회’로 변경하는 개선안을 내놨다. 지난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도 개선방안이 나왔다. 박종희 고려대 교수(법학과)는 “노동자들이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는 고용보장 문제를 포함한 경영참여를 위해서라도 노조 외의 새 근로자 대표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새로운 종업원대표기구를 제안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에서 이질적인 제도가 아닌 셈이다. 오히려 노사협의제도를 개선하는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참여형 노사관계는 전제가 있다. 서울시 노사정 모두 종전과 달라야 한다. 적어도 노사정은 대립·배제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노사정 모두 경영주체로 인정하되, 엄격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특히 서울지하철 3개 노조가 참여형 노사관계를 만드는 주체로 적극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이사제가 경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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