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노마 레이>는 1970년대 미국 남부의 방직공장에서 노마 레이라는 한 여성 노동자와 노조활동가가 노조 설립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 주는 영화다. 성·인종 차별이 심하고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가 지배적인 마을의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온 노조활동가를 "공산주의자나 선동가이거나, 사기꾼이나 유태인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에 해당하는 놈"일 거라며 문전박대한다.

공장 노동자들은 노조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하다. 흑인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린치를 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공장 밖에서 노동조합 과반수 인증투표 개표 결과에 귀 기울이던 노마 레이와 노조활동가는 공장 안에서 울려퍼진 함성소리를 듣고 기뻐한다. 공장 노동자의 과반수 지지를 받은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로서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마 레이>의 엔딩은 미국의 노동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연방노동관계법 제7조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가입·결성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데, 제9조에서 교섭단위 노동자 과반수에 의해 지명 또는 선출된 대표자가 교섭단위 노동자 전원을 대표해 배타적인 단체교섭권을 행사하도록 한다. 그 결과로 체결되는 단체협약의 효력은 교섭단위 노동자 전체에 미치는데 이것이 이른바 미국식 ‘배타적 교섭대표제도’다. 이처럼 미국은 과반수 지지를 받은 교섭대표자에게 배타적인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데, 사용자가 이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소수노조도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 여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배타적 교섭대표제’가 정당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는 다수결 원리에 따라 개별 노동자의 의사를 확인해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표를 결정하는 절차에 있다.

헌법에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규정이 없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헌법 제33조1항은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설립하고 자신이 ‘선택한’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때로는 단체행동을 한다. 헌법은 2명으로 이뤄진 노동조합이든 1천명으로 이뤄진 노동조합이든 그 소속 조합원이 향유할 수 있는 노동 3권에 질적인 차이를 두지 않는다. 다만 조직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복수노조제도 아래에서 소수노조 조합원이 되는 경우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교섭대표노조와 그 대표자에 의해 근로조건이 결정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노조를 정하지 못했을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모든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권을 행사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노조 조합원의 노동 3권 행사는 심각히 제한된다. 소수노조의 조합원은 자신이 가입의사를 밝힌 적도 없는, 즉 일정한 시점에 더 많은 조합원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외부적 사정에 의해 교섭대표노조가 된 단체와 그 대표자에 의해 자신의 근로조건을 좌우당한다.

소수노조 조합원과 교섭대표노조 및 그 대표자는 사단적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단체대표 법리에 비춰 봤을 때에도 교섭대표노조가 배타적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식 ‘배타적 교섭대표제도’에서처럼 해당 단위 노동자들의 지지·반대 의사를 묻는 절차도 없다. ‘의사결정 과정’으로서의 다수결 ‘원리’는 부재하고, 오직 특정 시점의 ‘다수’라는 요건만이 교섭대표노조제도의 정당성을 허약하게 지탱해 줄 뿐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2012년 교섭대표노조에게만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노조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가 공정대표의무다. 헌법상 기본권과 민법상 단체법리와 다수결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라면 공정대표의무는 더욱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

더불어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하는 단체협약의 최소한의 정당성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거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헌법과 노동법의 정신에 맞게 제도의 흠결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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