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형사정책연구원이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신뢰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경찰 24.9%, 법원 24.2%, 검찰 16.6%였다.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경찰 36.8%, 법원 41.6%, 검찰 51.8%였다고 한다. 사법기관 전체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법관들은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경찰보다 낮게 나온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다. 법관들이 공정한 판결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과로하는지 몰라서, 홍보가 부족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노동사건이나 과거사 사건,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 대선 불법 개입 같은 공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최근 판결을 보노라면 홍보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노동사건의 경우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 노동조합 조직변경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판결, 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사건 판결 등 노동자들의 권리에 눈감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판결이 선고될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동자들은 울분과 좌절에 치를 떨었다. 노동자계층은 우리 사회 구성원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노동자들이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올 수 있겠는가.

법원의 노동사건 판결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은 그동안 누차 있었다. ‘민사법의 독침(毒針)’을 맞아 노동법 의의와 취지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대법원이 사회적 양극화의 법적 전위(前衛)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노사갈등의 중요한 국면에서 노동인권과 사회정의보다는 시장근본주의의 법적 표현인 재산권 절대 원칙과 사적자치 원칙을 우선함으로써 노동인권에 대한 억압적 질서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법 모든 영역에 걸쳐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근거 없는 정책론이 규범론을 압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노동 판결이 양산되는 것은 법관들이 노동현실과 노동자들의 처지 그리고 노동법의 특수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관들은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조인의 길을 걸은 엘리트들이다. 대부분 노동현실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됐지만 법조일원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지금 위와 같은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교나 연수원을 비롯한 교육과정에서 노동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데다, 노동전담부에 배치된 법관이라도 노동사건에 대해 알 만하면 전보돼 버리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 특히 대법원은 시민법으로 무장된 대법관들만으로 구성돼 있다. 신의성실 원칙을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행사를 막는 데 사용하거나 비법인사단의 실체만 인정되면 노조법상 조직변경을 할 수 있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법의 올바른 적용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민사 법리조차 제대로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실체법적인 측면에서 노동법이 탄생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구제절차와 기구가 그에 맞게 정비돼야 한다. 실체법은 그 이념과 인간상에 부합하는 소송절차를 갖춰야 법체계로서 온전하게 운용될 수 있다. 노동법도 독립된 법체계로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립된 법원과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법원은 평등한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전제로 한 민사소송절차를 적용해 노동사건을 재판한다. 그 결과 종속적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실체법상 권리가 구제절차에서 형해화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의 하나로 노동위원회에 의한 판정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차별시정 판정업무는 본질적으로 법률해석과 적용이라는 사법(司法)의 영역에 속하므로 행정위원회인 노동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또 심판에 참여한 공익위원에 법률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전문성과 공정성에서 의심을 받고 있다. 간이하고 저렴하며 신속한 권리구제를 목표로 하지만 사용자가 구제명령에 불복할 경우 사실상 5심제가 된다. 확정된 구제명령에 강제집행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우에 따라 민사소송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별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을 설립하고, 직업법관과 노사참심관으로 재판부를 구성해 전문성을 제고하고, 약자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소송수행을 지원하고 신속한 진행을 도모하는 절차상 특례를 도입하는 참심형 노동법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참심형 노동법원은 노사 대표가 참심관으로 분쟁해결 과정에 참여해 민주적 정당성과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일 것이다. 칼 폴라니는 유럽의 참심형 노동법원(industrial tribunals)이 공공의 개인 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 기업이나 비상사태 동안의 권력 횡포와 차별에 정면으로 맞섰다고 평가했다. 독일·프랑스·영국을 포함해 노동법원이 있는 나라들은 경영계도 노동법원의 긍정적 역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처럼 대법원이 일원화돼 있는 나라에서는 대법원 구성이 다양화돼야만-적어도 인구 구성에서 절대 다수인 노동자계층을 대변하는 인사가 상당수 있어야만-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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