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지난해 4월 퇴직·자회사 전적을 거부한 직원들을 원격지에 발령하거나 특정부서에 배치한 뒤 생소한 업무를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인위적으로 저성과자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0일 <매일노동뉴스>는 당시 퇴사를 거부했다가 '다이렉트세일즈팀'으로 발령 난 매니저들을 만나 들은 얘기를 재구성했다. 다이렉트세일즈팀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로 알려진 '아오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들은 "다이렉트세일즈팀은 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만들거나 괴롭혀 자진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퇴출 프로그램"이라고 입을 모았다.

SK텔레콤의 ‘아오지’

갤럭시 기어S, 기어S2, 기어 S2클래식, 키즈폰 총 30대.

여인식(가명)씨가 3월 중으로 팔아야 하는 목표치다. 한 달에 최소한 7개는 팔아야 한다. 그런데 여씨가 판매한 IT기기는 고작 1개다. 지인에게 떠맡기다시피 마수걸이를 하긴 했으나 그런 '지인 영업'은 이미 동이 났다. 온종일 발품을 팔다 오늘도 혹시나 하고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적인다.

지난 15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난 여씨는 SK텔레콤 다이렉트세일즈팀 매니저다. 다이렉트세일즈팀은 스마트빔(소형 빔프로젝트)이나 키즈폰·스마트워치 같은 IT기기 유통업무를 지원하는 조직이다. 여씨는 "이번달도 사유서를 써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유서만 쓰면 끝이지만 두 달 연속이면 사유서에 팀장 경고를, 세 달 연속이면 사유서를 쓴 다음 본부장 경고를 받는다. 그 다음은 여씨도 알지 못한다. 그는 "아직까지 네 달 연속은 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며 "아마도 징계해고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SK텔레콤이 다이렉트세일즈팀을 만든 것은 3년 전이다. 그전에는 대리점에 상품을 위탁해 판매했는데, 다이렉트세일즈팀이 만들어진 뒤에는 팀 소속 매니저들에게도 대면영업을 시키고 있다. SK텔레콤 직원들은 이 팀을 소위 '찍힌' 직원들이 가는 '아오지'라고 부른다.

여씨는 지난해 4월 실시한 특별퇴직을 거부했다가 원격지 발령을 거쳐 지난해 12월 수도권마케팅본부에 속한 다이렉트세일즈팀으로 발령 났다. 그는 "다이렉트세일즈팀은 KT의 CP(부진인력을 뜻하는 C-player)처럼 괴롭혀서 자진퇴사를 유도하는 퇴출 프로그램"이라며 "우리는 기어·키즈폰 30개 판매가 목표지만 관리자들은 우리를 자르는 게 목표"라고 단언했다.

목표 달성은 '미션 임파서블'

SK텔레콤 입사 후 20년 넘게 지역 네트워크본부에서 일한 여씨는 하루아침에 기술자에서 영업직원이 됐다. 여씨는 "물건을 팔아 본 적도 없고, 연고지도 아닌 서울에서 대면영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여씨의 설명에 따르면 다이렉트세일즈팀 매니저들은 출근도장을 찍고 오전 10시30분 전에 전단지를 들고 길을 나선다. 당구장·골프장·약국·치과·한의원·어린이집·유치원·마트·시장·미용실·식당·커피숍. 여씨가 전단지라도 한 장 놓고 오기 위해 들른 곳이다.

"대리점주에게 한 달에 스마트워치나 키즈폰을 몇 개나 파느냐고 물어보니까 많아야 7개 판다고 하더라고요. 영업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고객 1천명을 만나야 두세 개 팔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달에 30개 팔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인 거죠."

여씨가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은 오후 5시30분이다. 그때까지 사무실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보고해야 한다. 보고서에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누구를 만나 어떤 상품을 홍보했는지, 실적은 있는지 없는지를 적는다. 그날 만난 사람의 명함이나 상품홍보를 위해 방문한 곳의 간판을 찍은 사진을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매니저들이 영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역추적도 한다.

"매니저들이 갖고 온 명함을 보고 파트장들이 '우리 직원한테 기어S 상품소개 잘 받았냐'고 확인전화를 합니다. 그쪽에서 '그런 사람 안 왔는데요' 하면 골치 아파지는 겁니다."

여씨는 '뻥 보고'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는 "회사는 휴대전화 GPS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어떻게 목표가 변해…

또 다른 다이렉트세일즈팀 매니저 김학선(가명)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고객에게 기어S, 기어S2, 기어 S2클래식의 차이점과 요금제를 설명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다음 행선지를 고민한다. 그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에도 영업을 할지, 부동산에 들어가서 영업할지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그나마 아무 데다 막 밀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갈 데가 없다"며 답답해하는 매니저들이 부지기수다.

기술직에서 일했던 김씨도 퇴직 거부자다. 지난해 팀장과 본부장으로부터 "자회사로 가든지, 퇴사하든지 결정하지 않으면 다이렉트세일즈팀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노(no)"를 외쳤단다. 그 역시 원격지 발령을 거쳐 지난해 12월 이곳으로 왔다.

김씨는 "악착같이 영업해서 최소 판매개수는 채웠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업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회사가 목표를 계속 수정하는 탓에 결국엔 저성과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지난해 주요 판매 제품이 스마트빔이었거든요. 처음에 8개 팔라고 해서 그만큼 팔았더니 다시 10대를 넘겨야 실적으로 쳐주겠다, 이렇게 목표를 바꾸더라는 겁니다. 저성과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성과가 좋으면 안 되니까 그랬을 거예요."

그는 지난달 서울 중심가에 있는 SK텔레콤 대리점 앞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스마트워치와 키즈폰을 팔았다. 팀장은 전제조건을 붙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판매해야 한다고.

"원칙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괴롭힘 당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겁니다."

김씨는 "지난해 다이렉트세일즈팀에서 괴롭힘을 못 견디고 퇴사한 직원들이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다이렉트세일즈팀은 1팀과 2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2팀 소속 매니저 16명 중 9명이 지난해 말 사표를 쓰고 퇴사했다고 한다. 이들이 나간 빈자리를 김씨 같은 '찍힌 자'들이 채우는 것이다.

"자괴감이 심하게 듭니다.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사표를 던진 직원들이 적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가면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올해 연말쯤에는 다이렉트세일즈팀에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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