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개 준정부기관·공기업이 연내에 해고까지 가능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정부가 각 기관 직원의 일정 비율을 매년 저성과자로 분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 “특정 사업장 언급 부적절해 삭제”

20일 공공부문 노동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18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한 ‘공기업·준정부기관 직원 역량 및 성과향상 지원 권고안’이 시행되면 각 공공기관 노동자 중 일정 비율은 무조건 저성과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의 권고안은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을 준용하고 있다. 평가를 통해 업무능력 결여·근무성적 부진자로 선정된 직원에게 교육훈련 또는 배치전환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최종 평가 결과 부진자는 직권면직할 수 있다.

노동계는 “공공기관에 쉬운 해고를 선도적으로 강요해 민간부문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가 우려하는 것은 업무능력이 결여되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한 직원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기재부는 당초 권고안 초안에서 “기관별로 개인별 업무 성과평가 결과를 중심으로 역량평가·다면평가 등을 종합 고려해 선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소비자원 사례를 들었다.

한국소비자원은 "업적·역량평가 결과 하위 10% 이내에 속하는 자"를 저성과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른바 강제할당 상대평가 방식인데, 노동부는 공정인사 지침에서 “최하위 등급에 의무적으로 일정 인원을 할당하도록 하는 상대평가는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절대평가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기재부는 최종 배포한 권고안에서 한국소비자원 사례를 삭제했지만, 노동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공공노련 관계자는 “기재부는 강제할당 방식의 상대평가는 판례상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으니 보완하라는 설명을 붙였지만 결국은 일정 인원을 강제로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해고하라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권고안에서 특정 기관 사례를 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삭제했다”며 “강제할당 방식의 상대평가를 권고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일부 기관 강제할당 상대평가, 정부는 팔짱”

그럼에도 노동계는 현장에서 일정 비율을 저성과자로 분류하는 일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 공공기관은 이명박 정권 때 업무평가 하위 일정 비율을 퇴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사문화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기재부 권고대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면 기존에 도입한 프로그램 내용을 답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은 올해부터 3급 이상 간부 중 근무평정 하위 10%를 저성과자로 분류해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노동부 지침과는 다른 강제할당 방식 상대평가인데도 노동부는 제재나 시정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공공연맹 관계자는 “지침에서 상대평가 방식을 지양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각 기관의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냐”며 “죽어 있던 공공기관 퇴출제가 부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각 기관이나 사업장의 프로그램 맥락이 중요하다”며 “하위 10%를 저성과자로 분류했다고 하더라도 최종 목적이 퇴출이 아니라 교육훈련이나 역량 강화라면 무조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