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에 봄볕 들었다. 부지런한 꽃장수가 한 단에 2천원 하는 노란색 프리지아 따위 온갖 봄꽃을 늘어놓았으니 거기 꽃길이었다. 안테나 높이 세운 방송 중계차가 그 옆 새로 생긴 호텔 앞자리에 빼곡했다. 언젠가 통신비정규 노동자 올라 농성했던 전광판엔 내내 바둑판이 떴다. 건널목 선 사람들이 저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논했다. 해고된 통신비정규 노동자들이 세 걸음에 한 번 엎드려 천천히 그 앞 사거리를 지났다. 저 멀리 비닐로 지은 농성장을 향했다. 자식 앞세운 죄 깊고 무거운 탓에 엄마는 오늘도 현수막 들고 광장에 섰다. 늘어선 카메라를 견뎠다. 종종 고개 떨궜다. 언젠가 잘라 없앤 머리칼이 다 자랐고, 주름 더 깊었다. 영정 속 앳된 사진만이 그대로였고, 덩그러니 천막이 그 자리에 여전했다. 이제는 유효할 리 없는 학생증을 가슴에 품고서 엄마는 별다를 것 없는 호소를 반복했다. 숨 쉬기를 애써 계속했다. 700일을 기록한 사진 속에 별의별 일이 이미 많았는데, 오늘 또 새로운 활동을 다짐하고 별렀다. 새롭게 만든 별 모양 상징물을 외투 지퍼에 달았고, 그 역시 죄 많은 동지의 외투에도 달아 줬다. 노곤한 봄볕 거기 들어 노란 별이 빛났다. 설레는 봄볕은 서러운 봄, 4월을 예고했다. 잊지 않겠다고, 옆자리 지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컨테이너 속에 쭈그려 앉아 하루 수천개의 리본을 만들었다. 서명 판을 지켰다. 지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눈 마주쳐 가며 동참을 호소했다. 안전과 존엄을 위한 승률 낮은 싸움을 계속했다. 가시밭길 가기를 자청했다. 별일이다. 인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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