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한아무개 조합원 사망소식을 접하고 파업에 들어간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한아무개(42) 조합원이 17일 새벽 6시40분께 충북 영동군 양산면 인근 죽천교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2011년 노동시간단축을 요구하며 시작된 지회 파업과 이에 대한 회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에서 비롯된 ‘유성기업 사태’를 겪은 뒤에도 지회 대의원을 지내는 등 노조활동에 열성적이었다. 고인은 최근 회사로부터 징계위원회 개최를 위한 사전조사에 나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고인은 회사가 사전조사 날짜로 지목한 이달 14일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주변과의 연락도 끊었다.

고인은 2011년 이후 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지속된 회사측의 차별과 탄압으로 심적 고통을 호소해 왔다.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상담치료까지 받았다.

◇10명 중 4명 우울증 고위험군=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3년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했다. 유성기업은 그에게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 됐다. 그는 왜 40대 초반의 창창한 나이에 죽음을 택했을까.

“고인에게 회사 정문은 고통이었다. 정문을 지나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노조탄압이 기다렸다. 배신해 버린 옛 동료들을 보는 일도 고역이다. 고인뿐만 아니라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에서 일하는 지회 조합원 대부분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먹고살려고 회사에 나가지만 공장은 아직도 전쟁터다.”

김성민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의 말이다. 고인을 비롯해 지회 조합원의 정신건강이 위기상태에 놓여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는 이미 오래다. 2011년 직장폐쇄 사태 이후 정신건강 고위험군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조합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고위험군 비율이 2012년 42.1%, 2013년 44.8%, 2014년 41.1%, 지난해 43.3%를 기록했다. 고인 역시 해당 조사에서 우울증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우울장애를 갖고 있는 국민 비율이 6.7%라는 것을 감안하면 유성기업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죽음 확산될까 두렵다"=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회사측의 무분별한 징계 남발이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차적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지회에 따르면 회사가 지회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고발 건수가 무려 1천300여건에 달한다. 비상식적인 고소·고발 관련 기록과 재판 결과는 대부분 조합원 징계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13명의 조합원이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해고됐다. 회사가 낸 고소·고발에 대응하느라 지회가 지불한 비용만 수억 원이다.

고소·고발이 누적되면 회사는 이를 이유로 징계를 추진하는 절차를 밟는다. 현재 지회 상집간부 상당수가 ‘정직’에 해당하는 출근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상태다. 징계를 받은 당사자들은 이를 일종의 ‘해고예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조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인에게도 이 같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회는 “2011년 이후 계속된 노조파괴와 현장탄압이 지회 조합원들의 심신을 악화시켰다”며 “고인의 안타까움 죽음은 유성기업이 지난 5년간 저지른 폭력의 결과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통이 삶을 포기하는 쪽으로 확산될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고인의 빈소는 충북 영동군 영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복형인 국선호 부지회장이 병환 중인 어머니로부터 장례 일체를 위임받았다.

한편 이날 오전 대전고등법원에서는 복직했다가 다시 해고된 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무효소송 항소심 변론이 재개됐다. 해당 조합원들은 이명박 정권 시절 대표적인 민주노조 와해사건으로 꼽히는 유성기업 사태가 '갑사'인 현대자동차 주도로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경찰 수사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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