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사람만 있고 공약은 없다."

"차라리 공약(空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이 지금처럼 푸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한숨만 나온다."

노동자와 노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 20대 총선을 지켜보면서 내놓은 말이다. 과연 이번 총선에서는 노동문제가 주요 이슈가 돼서 앞으로 4년을 밝힐 수 있을 것인가. 마침 지난 14일 양대 노총이 각 정당 노동공약 비교평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당은 0점, 야당은 60점에서 100점까지 겉으로는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해당 점수는 총선을 관전하는 입장에서 양대 노총이 각 정당에 노동현안에 대한 입장을 묻고 그 결과를 수치화한 것이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공약은 지난 대선에서 나온 공약의 반복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당은 여전히 나쁜 일자리 늘리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을 제고하겠다는 제1 야당의 주장도 실현가능한 세부계획이 없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이런 공약이 있는지도 모른다.

야당이 주장하는 노동정책도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당선되더라도 정책이 실천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렇게 걱정하는 이유는 정의당을 제외한 여야 어느 당에서도 노동기본권에 대한 공약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최근 수년간 우리는 노동기본권 후퇴를 현장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노동자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반성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개별적 근로조건은 완벽한 노동기본권 보장의 기초에서나 가능하다. 자율성을 기초로 한 집단적 노사관계의 활성화만이 복잡다단한 현재의 노사관계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는 등의 의견은 오늘의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기본이 온데간데없으니 그 공약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양대 노총은 각 당에 10대 노동정책을 요구했다. “그렇게나 많이?”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거창할 것도 없다. 그냥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온전한 실현이다. 일반적으로 공인된 세계 시민들의 상식 수준의 실천이면 충분하다.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권 보장, 전임자 활동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 등이 그것이다. 시기상조라는 과거의 핑계는 날려 버려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모든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도 될 만큼 바탕이 돼 있다.

여기에 각 당이 거창한 공약에 앞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현행법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으면 좋겠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벌이 핵심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만큼 제도적으로 노동조합과 노동기본권을 보호하는 나라도 없다. 헌법에서 노동 3권을 천명하고 노동관계법에서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하게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받아들이는 느낌은 어떤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법 집행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감독기관은 손을 놓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를 조장하는 전문회사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부당노동행위만 엄벌하더라도 노사 힘의 균형은 상당히 제고될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상신브레이크 사건에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하급심이기는 하지만 대구지역 한 택시회사 사건에서도 사용자의 어용노조 설립을 엄히 처벌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국회의 기능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입법기능 못지않게 행정부 견제기능도 중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국회에서는 법을 잘 만드는 자 못지않게 법 집행이 제대로 되는지 잘 감시하는 자가 많았으면 한다. 부당노동행위를 포함해 그동안 정부가 보여 준 행정집행은 무법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예가 2대 지침의 일방적 시행이다.

최근 높은 식견을 겸비한 법률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법률가 특히 법원은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법 논리에 벗어나는 법 집행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2대 지침이 그렇습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법부의 성질을 십분 활용하십시오. 최근 정부의 행정이 국가 기본질서를 흔들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줄기차게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하세요. 한 번에 안 되면 두세 번이면 어떻습니까.”

법률가의 말이 나에게는 “노동자들이 이번 선거를 잘 치러 주세요”라고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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