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민 상선노련 위원장

“24시간 내내 바다에서 일하는데 임금은 육상 근로자와 비슷합니다. 돈 벌려고 배 탄다는 건 옛말이에요. 해운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선주들은 선박을 팔고 있어 선원들의 고용은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는 메리트도 없는데 고용도 불안해져 진퇴양난 상황입니다. 정부의 해운업계 지원은 회사채 만기를 연장하면서 10%대 고리를 받는 금융지원뿐입니다. 수혈을 해 주지는 못할망정 링거를 빼는 거나 다름없어요. 정부가 해운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면 해운업계만 보호할 게 아니라 선원들도 육성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성민(61·사진) 전국상선선원노동조합연맹(상선노련) 위원장은 정부의 해운업 지원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해운업 불황이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1조4천억원의 선박펀드 조성 계획을 밝혔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조선업은 적자, 해운업은 서자”라는 볼멘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선박펀드는 부채비율 400% 미만인 기업만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운업 불황으로 인한 일자리를 잃은 선원들에 대한 지원대책은 빠져 있다. 하 위원장은 지난 10일 부산시 중구 연맹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불황으로 선주들이 국외 선사에 배를 매각하는 일이 계속될 경우 선원들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며 “정부는 체계적 지원을 통해 국내 선박의 국외 유출을 막고 선원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위원장은 지난해 2월 당선해 연맹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진해운해상연합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연맹은 해상노련에서 갈라져 나와 2014년 8월 설립됐다. 조합원들은 외항상선원과 해외취업선원들로 구성돼 있다. 설립 2년차를 맞아 조직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연맹은 해운업 경기 변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해운업의 흥망에 따라 선원들의 일자리가 고무줄처럼 늘거나 줄기 때문이다.

“선원 고용안정 빼먹은 정부의 해운업 지원”

- 올해도 해운업 전망이 어둡다. 현장에서는 해운업 불황을 어느 정도 상황으로 보나.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던 배들이 7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는 지경이다. 저속으로 달려야 그나마 연료 효율이라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다. 업황이 좋으면 화물도 많이 실리고 배들도 빨리 달린다. 국제경기가 나빠져 화물은 줄었는데 유류비 부담이라도 줄이려고 천천히 달린다. 운항을 안 해 항만에 띄워 놓은 선박도 있다. 조선업 경기가 좋아져야 해운업도 살고 철강업도 사는데 불황의 끝이 안 보인다. 2~3년은 불황이 더 갈 것으로 내다본다.”

해운업은 환율과 유가 변동 등 국제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다. 선박을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고 운임을 받는다. 주로 해외로 출항하는 선박이 대부분이라 해외 의존도가 높고 원가에서 차지하는 연료비 비중이 크다. 수출입 물량이 떨어져 운항 횟수도 줄게 되니 해운업체 수익은 악화되고 선원 고용은 불안해지고 있다.

- 정부의 해운업 지원대책에 대한 생각은.

“부채비율 400% 미만 기업이 자구노력을 수반할 경우로 지원 대상을 한정했다. 국내 해운사 중 정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선사가 몇 곳이나 될지 의문이다. 조선업을 살리려고 대형 선박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수출입 물량이 줄어 대형 선박이 운항을 하지 않는 것이 해운업 불항의 원인이다. 현재 정부의 해운업 지원은 선박을 외국에 팔아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1천억원에 배를 샀는데 300억원에 매각을 해 이중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선박의 외국 유출 막아 선원 일자리 지켜야”

- 해운업 불황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나.


“선원들에게 선박 매각은 회사 폐업과 같다. 육상 노동자들과 달리 선원들은 배가 외국에 팔리면 일자리 자체가 사라진다. 배가 아예 없어지니까 경기가 좋아져도 돌아가 일할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어렵지 않은 논리인데 정치인들은 선박이 외국으로 팔리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해양수산부에서 선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힘을 쓰는 건 알지만 선박이 외국에 팔리면 고용불안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지금 선사들은 경영난을 극복하려고 선박을 외국에 매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내년에 경기가 좋아져서 배가 필요하면 비싼 값에 다시 사 와야 한다. 선원들 일자리도 없어지고 국부도 유출되는 것이다. IMF 당시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선박이 외국에 팔려 나가지 못하도록 펀드를 만들어 선박을 매입했다 나중에 되팔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도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는 것 같다.”

- 선원들 처우는 어떤가.

“1980년대만 해도 배를 타면 대기업 정규직 공장노동자만큼 벌었다. 가족들이랑 1년 가까이 떨어져 파도 위에서 생활하면서도 임금이 괜찮으니까 메리트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 벌고 싶어서 배를 탄다는 얘기는 옛날 얘기다. 지금은 24시간 하루 종일 배에서 일해도 대기업보다 임금이 낮다. 해운업이 불황이니까 해운업체도 임금을 못 올린다. 선원들은 평생 배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배에서 내릴 경우 육지생활에 정착하기 어렵다. 노후대책을 위해 선원의 퇴직연금도 빠른 시일 안에 도입돼야 한다. 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해운강국으로 키우는 데 선원들의 공이 컸다. 선원들이 고생한 만큼 제대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하고 열린 노동운동으로 입소문 내겠다”

-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조직확대에 나서기로 했다.


“연맹 조합원 중 내항선원의 비중이 낮다. 내항선원은 배 한 척에 서너 명이 탄다. 선주가 친척인 경우도 많은데 사용자가 친척이니 노조를 설립하기도 어렵다. 소산별 형태로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사업장 단위로 가입하지 않아도 선원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내항선원이 연맹에 가입하면 어떤 혜택이 있고, 근로조건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홍보할 계획이다. 내항상선은 선원노동계에서 미조직된 분야인 만큼 연맹이 조직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 조합원이 선원들인 만큼 우리 연맹이 조직화에는 특화돼 있다고 자부한다.”

- 임기 동안의 목표를 말해 달라.

“임기 동안 국제운수노련(ITF)에 가입할 것이다. 조합원들의 애로사항이라면 집안일도 나서서 해결하는 연맹으로 만들고 싶다. 조합원이 중심이 되는 노조, 투명한 노조가 27년 노동운동을 하면서 지킨 소신이다. 노조 회계부터 의사결정까지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싶다. 선원들이 배를 타다 보니까 소문이 늦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선원들이 소문을 듣고 연맹에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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