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에 대해 연일 쏟아지는 야릇한 판결을 보며 나는 그런 판결을 선고한 판사들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가설을 설정해 봤다. 그 판사들도 나름의 이유와 모종의 논리로 위와 같은 판결을 선고했을 것이니 그에 부합하는 어떤 배경과 맥락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우선 이들 판사들의 친구 중 노동자, 특히 노조활동을 하는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스산하고 노조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피부에 와 닿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판사가 맘 편히 가는 동창모임이나 교회모임 등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기업가 아니면 관리자일 것이고, 이들 중 노조가 헌법상 보장된 단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대신 이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인이 이단 대하듯 노조를 비난할 것이다.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판사 자신도 노조가 불법단체는 아니되 유해한 단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다음, 이들 판사들이 참석하는 연수원 동기모임에서 술값은 로펌 변호사들이 낼 것이다. 이들은 판사인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면서 그 고충을 십분 이해해 주고 나아가 몇 년 후 법원을 떠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말해 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술값까지 내주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동기같이 느껴질 것이다. 이러니 이들과 같은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하는 주장들도 살갑고 설득력 있게 느껴질 것이다.

다음, 이들 판사들은 자신이 그러하든 아니면 시댁이나 처갓집이 그러하든 상당한 자산수익을 얻고 있을 것이다. 자산수익을 잘 운용해서는 아니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이 얼마 전 대법원에 지명되기도 했다. 이러니 이들은 경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기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거액의 회사 돈을 횡령한 대기업 총수를 집행유예로 내보내는 관행과 파업을 행하고 집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대표를 구속까지 하는 전통은 이런 과정에서 형성됐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 중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있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있다(“경영권과 노동 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도7225 판결)

다음, 이들 판사들은 아침마다 조중동 중 하나의 신문을 볼 것이다. 법원장이나 다른 단체의 기관장들과 대화를 하고 담소라도 나누려면 이런 신문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법을 배운 입장에서 한때 이런 신문들의 단선적이고 선동적인 논리가 거슬렸겠지만, 매일 아침 보다 보니 이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들의 논조대로 살지 않으면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부자 몸조심하듯 매사 튀지 않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했을 것이다.

다음, 이들 판사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뭘 하는 것에 거부감이 클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홀로 반 급우를 모두 왕따시켰을 것이고 청년 시절에도 고시공부로 몇 년간 홀로 썩었을 것이다. 혼자 노력으로 그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노동자들이 조직을 만들어 무슨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일단 거부감부터 들 것이다. 모든 조직은 기본적으로 조직폭력배 같다고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이들 판사들은 노동사건에서만 유독 '구체적 타당성'을 중시하고 '신의칙'을 애지중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법률에 정리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이 명시돼 있어도 '구체적 타당성'을 무기로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당한 통상임금을 토대로 노동자가 법정수당 차액을 청구해도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신의칙상 배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일반 민사사건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고 '신의칙'은 일반원칙으로의 도피라고 하여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이런 차이를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다음, 이들 판사들은 사법시험에서도 연수원에서도 노동법을 선택해 공부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사건 전담 재판부에는 희한하게도 이런 판사들이 많이 배치된다.

마지막으로, 이들 판사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판사들과만 어울릴 것이다. 해서 이들은 다른 판사들도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한다고 믿고 뿌듯해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판결을 비판하는 노동자들과 민변 변호사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로 치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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