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이길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프로바둑 세계 일인자인 이세돌은 9일과 10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연패했다. 5번을 겨루는 대국에서 이세돌은 벌써 두 판을 알파고에게 내줬다. 국민은 놀랐고, 세계는 경악했다. 바둑은 오랜 훈련과 실전 그리고 직관이 지배하는 인류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놀라운 계산능력으로 체스와 퀴즈에 이어 바둑까지 인류 대표를 꺾었다.

알파고의 승전보가 타전되자 세계는 들끓고 있다. 알파고의 승리는 '제4차 산업혁명'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해석됐다. 인공지능은 이미 무인 자동차와 무인 공장, 스마트 금융 등에 적용되고 있다.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 전기와 대량생산시스템의 2차 산업혁명, 정보기술(IT)과 자동화의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로봇· 3D프린터·사물 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 핵심 동력이다. 지난 1월20일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회의장 분위기는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미래고용보고서'도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이 활용돼 앞으로 5년간 세계에서 7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진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은 200만개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는 전망도 나왔다. 앞으로 5년간 5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결론이다. 이쯤 되면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을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기술혁신에 의한 산업혁명은 곧 사회혁신과 맞물린다. 적어도 1·2차 산업혁명이 그랬다. 2차 산업혁명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생산방식의 혁신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 확대를 가져 왔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거나 통제하는 사회민주주의·국가사회주의(파시즘)·공산주의 국가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1~2차 세계대전 전후 성립된 스웨덴·독일·러시아의 국가체제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로봇을 핵심동력으로 하지만 기술혁신이 국가체제 또는 사회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았다. 때문에 인공지능·로봇에 의한 기술혁신은 3차 산업혁명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이다. 정보기술·자동화의 진화된 버전인 셈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선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인류의 새로운 미래라는 낙관과 인류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비관이 맞서고 있다. 공상과학영화(SF)인 매트릭스·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는 기계(인공지능)가 인류를 지배하는 우울한 미래를 보여 줬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에 관한 의견은 엇갈린다. 긍정과 부정이 존재한다. 때문에 인공지능과 로봇에서 비롯된 기술혁신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다. 그런데 낙관론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유로 국가와 산업 및 노동시장 변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계경제포럼은 인공지능·로봇 활용을 위해 세계 각국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주문했다. 특히 스위스 UBS은행은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잘 수용할 수 있는 나라’ 가운데 25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대만·홍콩에 비해 순위가 낮다.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세계 경영자단체와 거대자본의 이런 분석은 과학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의도조차 불순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유연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평가는 아예 외면됐다. 거대자본은 겉으로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웠지만 그 의도는 결국 노동시장 유연성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침체 국면에서 거대자본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거대자본에게 유리한 변화를 위한 명분이자 신기루인 셈이다.

인류에게 쓸모 있는 편리를 제공하는 인공지능·로봇이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는 없어야 한다. 즉 인공지능·로봇은 인류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쓸모 있는 재화여야 한다. 거대자본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인공지능·로봇은 말 그대로 인류에게 재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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