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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사용자책임 확대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다녀와서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얼마 전 일본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가 주최한 국제세미나에 다녀왔다. 이번 세미나 주제는 “분열된 사업장 시대, 사용자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로 일본·미국·영국·독일 등 10개 국가의 노동법학자가 참여해 각국에서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에 관해 발표했다. 분열된 사업장(Fissured workplace)은 오바마 정부의 노동행정관으로 지명된 하버드대 데이비드 와일 교수의 책(국내에는 <균열일터>로 출간됨)에 사용된 용어다. 오늘날 기업은 법적으로 단일한 기업형식을 뛰어넘어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망을 통해 기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노동에 대한 지배 역시 전통적인 직접고용 방식이 아니라 다른 기업에 대한 지배를 통해 간접적·중층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제도적 대응은 기업별 형식적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을 일컫는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각국 노동법과 노사관계제도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기업의 법적 경계를 가로질러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판례를 내놓는 데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일본의 경우 이미 1995년 최고재판소가 아사히방송 사건에서 노조법상 사용자책임을 확대한 바 있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통제를 받는 가맹점주들이 노조에 가입해 본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사건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미 지방법원과 노동위원회는 가맹점주에 대한 노조법 적용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일본 도쿄대 교수와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일본 노동법의 권위자 스게노 카즈오 교수 역시 원청을 상대로 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을 질문한 필자에게, 일본의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노동조건을 실제 지배하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대체로 인정하는 경향이라고 답했다.

이렇듯 판례를 통해 사용자책임을 확대하는 사례 이외에 아예 원청을 상대로 한 노동 3권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국가들도 상당수다. 스페인의 경우 기업이 자신의 사업을 하도급 줄 경우 원·하청 노동자대표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원·하청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자대표(노조)는 상호 교류와 공동의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 하청노동자 대표가 자신들이 일하는 원청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활동을 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지 못한 경우라면 원청 노동자대표를 통해 원청과 교섭하는 것 역시 보장되고 있다.

특히 원청·지주회사 같은 지배기업의 결정으로 전체 기업관계망에 속한 기업에서 경영상해고 등이 실시될 경우 하청 같은 하위기업이 아니라 지배기업이 노동자대표와 협의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도 이와 유사한데 기업의 형식적 단위를 넘어선 ‘경제적·사회적 단위’가 노동법 적용 단위가 되는 추세다. 경제적·사회적 단위의 구체적 범위는 단체협약 혹은 판례를 통해 정해지는데, 노동자대표의 활동 범위나 경영상 해고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의무 역시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단위 차원에서 규정된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에서 경영상 해고의 경우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경영상 위기의 입증, 해고회피노력이나 노동자대표와의 교섭의무가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단위 차원에서 이행돼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과 마찬가지로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스페인·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이나 외주화를 규제하려는 단체행동이 법령상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파업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업이 관계망에 속한 다른 기업을 통해 노무·용역을 제공받는 것은 불법이 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원청 혹은 지배기업의 사용자책임을 실효성 있게 규율하는 것이 간접고용 규제, 나아가 노동법의 실질적 적용에서 관건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청을 상대로 한 노동 3권 행사를 사실상 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법·제도의 낙후성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윤애림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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