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황상기(61·사진)씨가 지난 4일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삼성전자 본사 앞에 섰다. 그는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다. 이날 오후 고 황유미씨 9주기를 맞아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황유미씨는 백혈병 투병 중이던 2007년 3월6일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황상기씨는 딸이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병을 얻었다는 것을, 딸 같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더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실제 인물이다.

아버지의 노력에 주변 도움이 더해져 고 황유미씨는 사망한 지 7년 반 만인 2014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지만 2심 뒤에는 상고를 포기했다. 산재는 그대로 확정됐다. 억울함이 풀렸을 법도 한데, 황씨는 여전히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냐는 질문에 그의 답은 이랬다.

“우리 유미는 공단에서 힘겹게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다른 직업병 피해자들은 산재를 인정받기도, (공단의 불승인 판정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하기도 버겁습니다. 보상 대상 질병을 확대해 많은 피해자들이 공단에 소송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야죠.”

황씨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대표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직업병 피해자 보상안과 관련해 "반올림과 재논의하자"며 이날로 150일째 서울 강남 한복판인 회사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올림·가족대책위원회와 교섭을 벌이다 조정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런데 조정위 조정안이 나오자 이행을 거부했다. 조정안에는 삼성전자의 사과와 보상안, 재발방지 대책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나중에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했지만 나머지 쟁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발족한 자체 보상위원회를 통해 직업병 피해보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반올림이 다섯 달 동안 풍찬노숙하는 이유다.

황씨는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보상에 나서는 바람에 (피해자들은) 수억원의 암치료비 중 일부만 보상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일하다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치료비를 제대로 못 받고 사과도 못 받는 게 어떻게 피해보상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삼성전자의 사과에 대해서도 그는 “딸이 직업병으로 사망하면서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딸아이 엄마도 병원 치료를 받았다”며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씨 어머니인) 김시녀씨도 나처럼 삼성전자와 싸우느라 가정이 망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황씨는 또 다른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운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9년이 넘도록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를 안 했어요. 유미처럼 반도체 노동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계속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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