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바야흐로 20대 총선이 시작됐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실질적인 사전선거운동은 진행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무관심한데 언론이 연일 선거 중계를 한 탓인지 벌써 선거운동 한가운데 있는 기분마저 든다. 게다가 후보자들은 어찌나 많은지 누가 누군지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노동조합을 위시한 노동현장에서는 선거 분위기가 그 어느 곳보다 일찍 시작되는 듯하다. 선거법에서 정한 단체 중 거의 유일하게 선거운동이 보장된 영향이 클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계를 대표하겠다며 20대 총선에 나선 예비후보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기 때문은 아닐까.

“노동자를 위해 노동계를 대표하겠다는 이들이 많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많을수록 좋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9대 총선에서 노동계를 대표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이들의 의정활동을 보자. 아마도 만족하는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대에는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많았다. 해산되기는 했지만 통합진보당은 무려 10%가 넘는 득표율로 13석을 얻었다. 양대 노총과 각 직역별 노동조합들의 응원에 힘입은 자들도 적지 않은 숫자를 기록했다. 그 숫자를 합한다면 국회 교섭단체(20명)를 구성하고도 남을 만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4년 전 많은 노동자들은 이들이 중심이 돼 노동자들을 위한 입법이 많이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좋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결과물도 보잘것없다(사실상 없다). 예를 들어 통상임금 문제는 4년 전이나 오늘이나 법률적 근거 없이 법원에 맡겨져 있다. 대법원에서 이미 여러 차례 불법파견 요건을 정리했지만 입법은 도리어 후퇴할 조짐마저 보인다. 19대 초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사례에서 보듯이 노조파괴 지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부당노동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4년 동안 재발을 막기 위한 기초적인 입법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거듭되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꼼꼼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았던 통합진보당 해산이 노동대변자들의 전열을 흔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다 정부와 여당의 완고한 국정운영과 유사보수언론이 여론을 장악한 결과 제대로 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지 않은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된 후보를 뽑지 않은 것은 아닌지, 빈말만 믿고 덥석 찍어 준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노동계를 대표하겠다는 이들이 정작 말과 다른 의정활동을 보이거나 오히려 노동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입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누가 노동자를 위한 후보자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 실패의 근본 원인이지 않겠는가.

진정 노동자와 노동계를 위해 일할 후보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당연히 헌법과 법률에 밝고 치밀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계획을 갖춰야 한다. 대안을 제안하고 토론과 설득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중에도 가장 필요한 덕목은 (필자 생각으로는) 촌음을 다투는 노동현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좋은 법률의 기초가 되지 않겠나. 학자나 변호사 같은 공인된 전문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노동현장에 노동관계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면 된다. 부족한 부분은 공부로 메우면 충분하다. 그래야 적재적소에 입법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행정부가 만든 고작 일개 지침이라고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노동권 보장을 주요 활동목표로 둔 국회의원 중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낸 분들은 평소 노동현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보여 줬다. 전부는 아니지만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충족했다. 요즘 들어 “4년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렇다고 안타까워할 수만은 없다. 지금은 후보자를 가려내는 일에 힘써야 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