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필리버스터를 중단한 제2 여당 같은 제1 야당의 무기력 때문에 정치에 대한 기대가 또 한 번 허물어졌다. 근본적인 한국 사회 변화를 강단 있게 주장해 온 진보정당은 존재감이 미약해져 주요한 변수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시대정신이 온축된 탈핵과 기본소득을 앞세운 녹색당의 선전이 기대될 정도다. 사회양극화와 삶의 질 하향평준화로 치달아 온 대한민국을 뒤바꿀 원대한 전망과 돈이 지고의 가치로 등극한 천박한 물신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더 나은 공동체 미래를 청사진으로 보여 줄 정치세력이, 정당이, 정치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유례없는 정치의 공동화 시대다.

이런 시국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송곳처럼 등장한 정치인이 있다. 아직은 활동가 이미지가 훨씬 강한 정치 신인이다. 여전히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쭈뼛거리는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용산참사 살인진압 주범 김석기가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온 경북 경주에서 대항마가 되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주목받고 있다. 보수색이 짙은 TK 본향 경주에서 혈혈단신으로 투신한 정치 신인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나야 권영국이라면 해낼 거라고 굳게 믿지만 우려하는 이들이 더 많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권영국은 어린 시절 배를 곯기 일쑤였고 가난을 안고 살았다. 전형적인 흙수저였다. 포항제철공고와 서울대를 거쳐 풍산금속 안강공장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집안을 책임질 장남으로서 어깨가 무거웠던 젊은이였다. 노동현장에서 부닥친 불의에 눈감지 않고 삼엄한 방산업체에서 민주노조 건설에 앞장서면서 그의 삶은 예기치 않은 길로 접어들었다. 권영국은 불씨가 돼 노동자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고 자신은 해고노동자로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지금도 경주 안강읍에서 그의 이름을 대면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헌신했다.

고심 끝에 힘겹게 결단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 권영국 인생의 제2막이 열렸다. 해고와 수배, 구속으로 집안을 돌볼 틈이 없었던 권영국에게 변호사는 생애 처음 돈을 벌 수 있는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수락하면서 가시밭길은 다시 이어졌다. 민변 노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주노조·화물연대·쌍용자동차·신세계이마트·삼성전자서비스 등 노동권 관련 대표적인 현안 사건을 도맡았다. 용산참사 구속 철거민 변호와 민변 세월호 참사 특위 위원장을 맡아 우리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심부에서 처절한 아픔과 마주하며 시대의 변호인 역할을 수행했다. 어처구니없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헌법재판소 심판 선고 자리에서 “오늘은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한 날”이라고 외치다 방호원들에게 끌려나갔다. 집회 현장에서 인권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하며 오히려 경찰에 연행돼 4차례나 구속영장 발부 뒤 기각으로 풀려나는 일을 겪으면서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국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가 정치를 결단한 이유는 그의 지난 삶에서 분명해진다.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이 국회로 가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노동자 민중의 실상을 직접 겪어 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구중궁궐 속 수첩공주와는 존재에 기반한 생각과 철학이 딴판일 수밖에 없다. 권영국은 대리정치가 아니라 직접정치를 자임할 수 있는 드문 적임자다. 두 번째 이유는 권영국이 한국 사회 최대 난제인 비정규 노동 문제를 해결할 전략과 결기를 갖춘 활동가이자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거리와 법정에서 투쟁하고 변론하는 변호사로 그가 보여 준 신뢰와 실력이면 두말할 것 없다. 세 번째 이유는 분열된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를 통 크게 다시 모아 낼 비전과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거대 보수양당의 각축장으로 변질돼 버린 정치권을 민의의 전당으로 뒤바꾸는 데 민생 현장에서 치열하게 검증받아 온 권영국이 제격이다.

권영국 출마가 도화선이 돼 시들해져 버린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를 향한 열망이 경주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든 낡고 타락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실정에 철퇴를 가할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민주노총 경주지부가 이미 지지후보로 결정한 권영국이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선량이 돼 국회로 들어가는 날 한국 정치의 지도가 바뀔 것이다. 정치가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성원을 간절하게 바란다. 거리의 투사이자 민중의 호민관인 권영국을 국회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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