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최우선 여성고용과제로 내놓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가운데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양호한 ‘전환형 시간제’ 비율이 6%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정규직이 필요에 의해 시간제로 전환하는 ‘전환형’ 비중이 극히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직 형태의 ‘채용형 시간제’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3·8 세계여성노동자의 날을 맞아 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박근혜 정부 3년 여성노동정책 평가와 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시간제 일자리 추이를 보면 주로 저소득층이 시간제 노동으로 유입되고, 이는 저소득층의 임금 감소로 이어져 소득분배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시간제 고용을 중심으로 한 여성고용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채용형 일자리는 폐기하거나 이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급 80만~160만원에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여성친화형 일자리로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의 효과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시간제 일자리 중 비교적 노동조건이 양호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비중은 2014년 기준 5.9%에 불과하다.

여성가족위는 보고서에서 양호한 시간선택제 기준으로 △자발적 선택 △최저임금 이상 △국민연금 △고용보험 △기간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자발적 선택 비율은 47.7%, 최저임금 이상은 60.8%, 국민연금 적용은 14.6%, 고용보험 적용은 19.6%,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은 68.4%로 파악됐다. 시간제 노동자 절반 가량이 자발적으로 시간제 노동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10명 중 4명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10명 중 8명 이상은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가 갈수록 가난해지는 이유다.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양호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비중도 극히 낮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4.4%에서 이듬해 5.9%로 다소 늘었지만, 고용률 70% 달성과 일·가정 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던 정부의 마스터플랜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신경아 교수는 “시간선택제 여성노동자를 면접조사한 결과 근무시간에 따라 월임금이 80만~160만원 수준이고, 정해진 근무시간 외에 초과근로가 일상적으로 행해지지만 정작 초과근로수당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직장 내에서 주변인 지위에 머무르거나 교육·훈련 대상에서 제외되는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을 작은 단위로 쪼개는 방식은 여성고용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여성이 경력단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을 개선하는 데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경력단절 악순환 끊으려면 '성별 임금격차' 해소해야"

그렇다면 여성을 경력단절 상태에 빠뜨리는 주요 요인이 무엇일까.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성별 임금격차’에 주목했다.

여성이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거쳐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할 때 이미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어 여성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택할지 가정에 머물지를 두고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성 경력단절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정재훈 교수는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실효를 가지려면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보육서비스 공공성 확보 같은 돌봄인프라 구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성별 임금격차 해소방안으로 아동수당 신설을 고려할 수 있는데, 노동계가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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