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경제국면은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불러온다. 저성장은 그 단어에서 내포하듯이 기업이나 국가 성장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률이 낮으면 노사관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하다. 임금인상은 낮아지고 기업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직면한다. 구조조정은 업종별로 전개되고, 그렇게 되면 성장업종과 쇠퇴업종 간 격차는 심화한다.

구조조정은 노동자 단결력뿐만 아니라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도 무력화시키려 덤빌 것이다. 반노동 정책을 지향하는 정부를 만나면 노동기본권은 더욱 후퇴한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가 횡행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노동기본권을 지켜 낼 마지막 보루는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로서 노동자의 목소리(voice)를 대표해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교섭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많을수록 사회적 대화의 범위가 넓어진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대화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수년째 10%를 오르내린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이미 구조화돼 있는 듯하다. 복수노조가 도입됐고 기존 노조의 조직화 노력도 계속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사회적 대화 노력을 노동조합에만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대안은 단체협약 적용률이다. 단협 적용률은 임금노동자 중에서 노동조합에 직접 가입하지 않더라도 단협을 적용받는 노동자의 수를 의미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협 적용률을 사회적 대화를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한다. 두 지표를 통해 사회적 대화의 정도를 평가한다. 유럽 국가는 노조 조직률보다 단협 적용률이 훨씬 높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사례를 든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7%대에 불과하지만, 2010년 OECD 자료를 보면 단협 적용률은 92%다. 스웨덴이 91%, 스페인은 73.2%, 영국은 31.2%, 일본은 16%, 미국이 13%다. 우리나라는 10%에 머물러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물론 이 수치가 정확하지 않은 추정치라는 점은 별론으로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미국은 노조 조직률과 단협 적용률의 차이가 없지만 유럽 국가는 차이가 크다. 여기서 단협 적용률이 높을수록 사회적 불평등이 낮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단협 적용률이 노동조합 조직률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 국가는 왜 단협 적용률이 높을까. 이유는 단협 효력확장제도에 있다. 단협 효력확장제도는 노사가 체결한 단협이 비조합원까지 적용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다. 프랑스는 산별노조가 체결한 단협에 단위 사업장 대표노조나 사용자가 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법에 따라 사용자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사업장에도 직종별 혹은 산업별로 체결된 단협을 지키도록 강제한다. 프랑스는 노조원이 아닌데도 단협을 왜 적용시킬까. 비조합원까지 단협을 적용하면 무임승차 논란이 있음에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사회적 효용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단협 확장제도가 있다. 근로자의 과반이 넘는 노동조합일 경우 사용자는 비조합원도 단협을 적용할 수 있다(노조법 제35조).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의뢰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27만6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사업장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로도 확장할 수 있지만, 조합원이 해당 지역 동종업종 근로자의 75%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노조법 제36조).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단협 확장제도를 적용받는 사업장이 거의 없어 사문화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단협을 확장시켜 사회적 대화 기능을 확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노사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단협을 비조합원까지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계속 이어짐>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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