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9일 산별노조의 지부·지회라도 ‘사단성’이 인정되면 산별노조 탈퇴 결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선고취지를 읽어 내려가는 판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사단·사단성·사단법인·법인 아닌 사단·비법인 사단…. 누가 들어도 어려운 얘기다.

10년 전인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판결과 거의 유사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차이가 있다면 소송 주체가 ‘노조’가 아니라 ‘교회’라는 점이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다.

“(교단에 소속된) 지교회가 소속 교단에서의 탈퇴 내지 교단 변경을 추진하려면 사단법인 정관 변경에 준해 교인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결의가 필요하고, 결의요건을 갖춰 교단을 탈퇴하거나 변경한 경우 종전 교회 재산은 위 탈퇴한 교회 소속 교인들의 총유로 귀속된다.”

교회분쟁 사건에 민법상 ‘법인 아닌 사단’ 법리를 적용한 판결이다. 10년 전 판결에서 ‘교단’을 산별노조로, 지교회를 ‘지부·지회’로, 교인을 ‘조합원’으로 바꾸면 올해 판결 내용과 같아진다.

교회분쟁은 주로 교단과 지교회의 갈등, 목회자 지위가 적합한가에 대한 갈등, 교회 재산을 둘러싼 갈등, 성폭력·배임·횡령 등 형사사건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교회분쟁으로 더 이상 하나의 신앙공동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경우 교인들이 교단 탈퇴를 포함한 ‘교회 선택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산별노조 탈퇴를 인정한 올해 판결은 어떤가. 사건 주체인 금속노조와 발레오만도지회는 갈등관계가 아니었다. 민·형사상 분쟁을 벌이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회사측과 창조컨설팅, 지회 반대세력인 ‘조조모’가 공모해 산별노조 탈퇴를 추진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사건의 실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판결에서 ‘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근로자 노조선택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에게 노조선택을 강요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법인 아닌 사단’ 법리를 끌어와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 단결권을 민법의 하위영역으로 귀속시키는 오류도 범했다.

노동조합 사건을 대하는 법원의 시선이 싸늘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사건 등을 바라보는 사법부의 시각은 너무 쌀쌀맞다. 그러더니 산별노조를 약화시키는 판결까지 내놓았다. '산별노조를 통한 집단적 단결권'을 강조하며 산별노조운동에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던 따뜻한 법원은 더 이상 없다. 법원이 노조의 기를 꺾어야 직성이 풀리는 악덕 사업주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