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의 대의원대회가 최근 잇따라 개최됐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50여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방침이 쟁점이었다. 그간 양대 노총의 정치방침은 특정정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또는 노동자후보 당선운동으로 갈렸다. 지지정당도 달랐다. 19대 총선에서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 창당주체로 참여했고,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했던 시절에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을 창당했다. 양대 노총의 정치활동은 이처럼 달랐다. 노동계가 단일한 정치방침으로 선거활동을 함께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방침을 폐기한 대신 민중진영 단일후보 지원방침을 밝혔다. 노동개악을 강행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한다. 한국노총도 반노동자 후보 심판을 결의했다. 정부가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취업규칙 운영지침과 새누리당이 발표한 노동 5법에 찬성하는 세력이 반노동자 정당이라는 얘기다. 한국노총은 전략·접전지구 20~30곳을 정해 낙선 또는 당선운동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이 총선에서 심판해야 할 정당으로 ‘새누리당’을 지목한 반면 한국노총은 노동악법을 강행한 정치세력을 반노동자 정당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양대 노총 간 차이라면 이 정도다. 반면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하지 않는 것은 공통점이다. 후보는 지원하지만 정당은 지지하지 않는 정치방침이다.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양대 노총은 정당 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결국 “반노동자 정당만 제외하고 정당 투표는 조합원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 돼 버렸다. 이른바 ‘무지개 투표’ 지침이다.

물론 배타적 지지보다 무지개 투표 방식이 대중조직다운 선거활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양한 정당지지 성향을 고려할 때 조합원에게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다. 양대 노총이 정치방침을 만들 이유가 없다. 적어도 양대 노총은 함께할 정당에 대해 밝히고, 그 이유를 조합원에게 설명해야 한다. 양대 노총 모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지 않았던가. 양대 노총이 특정 정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했던 것도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그래야 선거 이상의 의미인 정치세력화라는 과제에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면 후보는 지지하되, 정당은 지지하지 않는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화제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경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버니는 유권자 앞에서 “어떤 문제든 내가 해결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되레 “제가 선출되면 여러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공언한다. 유권자와 그들이 선출한 대표 간의 긴밀한 관계 형성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그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버니는 부자 증세와 거대은행 해체,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노동자 경영참여와 종업원 소유제도 강화, 공립대학 등록금 무상지원, 국민의료보험제도 실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버니는 평생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 맞서 싸웠다. 정치권 밖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버니는 진보적 의제를 사회 쟁점화하고,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함께하는 정치혁명’은 바로 이것이다. 버니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거나 패배하더라도 선거 이후의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뒀다. 버니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바로 이것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여당의 노동개악과 양대 지침에 대한 찬반여부에 따라 후보의 낙선 또는 지원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동개악에 찬성하는 정당은 심판하고, 반대하는 정당은 지지한다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총선 국면에서 노동의제가 쟁점화된다.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후보자와 정당을 하나로 묶어 세울 수 있다. 후보는 지원하되, 그 후보가 소속된 정당은 지지하지 않는 딜레마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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