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이탈리아·프랑스·독일 세 나라가 합작해 1989년에 만든 영화 <장미의 이름>은 시종일관 음유시인처럼 느리게 흐르지만 러닝타임 13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에너지로 넘쳐난다. 화면엔 중세의 어둡고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지만, 바닥에 흐르는 이야기는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숀 코네리의 압도적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농밀한 연출력은 덤이다.

계속되는 수도사들의 죽음 뒤엔 유물론과 형이상학의 치열한 싸움이 도사리고 있다. 싸움의 매개물은 중세 내내 금서로 지정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첨탑 속에 밀봉된 <시학>을 읽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간다. <시학>은 웃음과 해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세의 엄숙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영화는 지난 19일 숨진 이탈리아 출신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80년에 내놓은 같은 이름의 소설에서 따왔다. 10년 전 에코가 나고 자란 이탈리아 토리노에 갔을 때 살아 있는 작가의 기념관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방대한 지식체계를 품었던 에코는 늘 비극에 맞선 웃음과 해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코의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진자>는 그의 본업인 기호학의 진수를 담았다. 세 명의 출판사 편집자들이 암호 메시지를 풀어 가는 과정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다뤘다. 로마 교황청은 “신성모독으로 가득 찬 쓰레기”라고 혹평했지만 <푸코의 진자>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에코가 죽자 여러 한국 언론에선 <중세를 사랑한 인문학자>라는 이름표를 붙였지만, 정작 에코는 살아가는 내내 중세의 상징인 로마 교회를 예리한 은유로 비판했다. 무거운 중세를 향해 유쾌한 '똥침'을 날린 셈이다.

사상가이면서 저명한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역사학자·미학자였던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부터 컴퓨터까지 지적 촉수를 수만 갈래로 뻗었다. 에코가 말년에 파고들었던 분야는 ‘언론과 정치 비평’이었다. 에코는 95년 이탈리아 상원 세미나에서 '신문이 살아남는 법'이란 제목으로 발제했다. 발제문은 걸프전과 테러를 둘러싼 언론과 정치 두 권력의 야합을 다뤘다.

에코는 제4의 권력이 된 이탈리아 양대 일간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 발제에서 “신문 언론이 살아남는 길은 권력 감시와 비판이란 고전적 명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유력 양대 일간지는 페루·아이티·르완다 학살엔 침묵한 채 공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영상매체(텔레비전)의 시녀가 됐다”는 에코의 지적은 오늘 우리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에코는 상원의 엄숙한 세미나 장에서도 해학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문이 어떤 사람도 물지 않는 개처럼 변했다는 소리일 뿐이다.”

더 이상 아무도 물지 않는 워치독(watch dog). 우리 언론의 슬픈 자화상이다.

언론이 기껏 대기업 노조나 시민단체나 물고 늘어지는 사이 재벌과 권력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라를 거덜 내고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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