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일. 고공농성을 벌였던 차광호씨가 땅으로 내려오는 데 걸린 기간이다. 아직도 서울에서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0일을 훌쩍 넘겨 하늘에서 농성 중이다. 통계상 분규 사업장과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든다는데 장기투쟁 사업장은 그대로다. <매일노동뉴스>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위원장

전해투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해고자 복직투쟁과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원인 진단과 지원대책 모색을 위해 2015년 5월27일 시작된 토론회가 4개월간 지속됐다. 이를 토대로 시작된 연속기고가 그간 6회 이어졌다. 현 시기 노동운동과 연대 역량을 최대한 모아 낸 전례 없는 기간과 규모의 집단적 해법찾기. 묘수풀이가 아니라 정석의 복기였다. 패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시도한 집단적 복기의 반복과 상상력 동원 과정이었다. 엄중한 현재의 정세에 휩쓸리고 매몰되지 않기 위해 각 진지를 지키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월대보름 지신밟기 심정으로 현재 한국의 노동과 자본 관계에서 연속되는 패배의 경험을 아프게 곱씹은 이유는 그 패배들이 ‘불가역적’ 패배가 아님을 반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패의 사슬을 끊고 승리적 관점의 투쟁 사례를 더 축적하며 역사적인 반격 국면을 맞이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간절한 기대와 달리 현실은 냉정한 패배의 국면이다. 전통적인 교섭과 쟁의행위로 단기적 합의에 이를 수 없는 노사 역관계 때문이며, 장기투쟁 사업장은 노조 무력화 내지 파괴로 인한 교섭해태로 사용자측 합의 주체가 숨어 버린 경우가 많다. 투쟁 장기화와 비전형적 투쟁 전술은 여기서 기인함을 변함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노사 양측의 벼랑 끝 버티기에는 교섭행위가 실종된다. 오로지 상대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비대칭 전략’만 존재할 뿐이다. 통상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가진 자본이 압도적 우세 속에 시간싸움을 벌이지만 열세인 노동자측에는 ‘연대’가 비교 열위 전선을 반전시킨다. 투쟁 주체들은 소수가 구사할 수 있는 비전형적 전술을 결단한다. 무기한 단식과 고공농성이 대표적이다.

투쟁 장기화는 양극단의 선택을 구간 반복하는 과정이며 결국 상처만 남긴 채 앙상한 합의서를 손에 쥐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한국적 장기투쟁의 아픈 현실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존재하는 조직노동운동의 사각지대. 연대운동이 집중해야 할 지향지대. 시간·에너지·돈을 모아야 하며 삼위일체로 투여해야 승부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조직운동의 결단이 필요한 전략적 선택 지점에 대해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결국 시간·에너지·돈의 집중과 배분의 문제다. 연대 단위에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투쟁 주체들이 필요한 최소 수준의 생존을 영위하기 위한 몸과 마음 상태를 유지·보존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며 결정적인 요소다. 투쟁 주체는 싸울 의지가 있다. 다만 재정이 없을 뿐이다.

재정이 없는 투쟁 주체에게 자본은 끝없이 투항을 종용하고 이를 이겨 내는 것이 마음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치유와 치료가 절실하다. 투쟁 현장에도 자본의 논리가 철저히 관철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을 향해서도, 자본의 논리로 행세하는 자들에게도 준엄하게 꾸짖고 싶은 외마디가 있다. “돈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역으로 조직운동과 연대운동이 투쟁 주체들이 버틸 수 있는 재정을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확보해 지원하는 체계를 확보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절실한 문제다. 보급과 후방을 등한시하면서 전쟁을 어떻게 이기나.

한국 노-자, 노-사 관계의 전략과 전술에서 노동자들의 처절한 버티기, 참담한 패배의 경험이 도드라지지만 그 아픈 과정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모색했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우선 알량한 수준에서 노사관계의 기울기라도 대등하게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이 4개월에 걸쳐 자문자답하는 토론과 3개월여의 기고가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25일은 대통령 취임기념일이기도 하고 철도·발전·가스 동맹파업이 거대한 연대의 힘으로 승리한 파업기념일이기도 하다. 노동자투쟁연대의 힘을 보여 준 날에 연속기고를 마감하며 승리의 힘은 연대의 힘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런 기회를 빌려 자신의 소중한 시간·에너지·돈을 노동자투쟁연대에 바치는 이 세상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염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바다에 휘몰아치는 노동말살의 폭풍에도 거침없이 자신과 노동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여러분들 덕에 오늘도 거리에서 당당히 외칠 힘을 얻는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은 연대의 실천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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