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동대부고가 드라마 <송곳>을 보여 주고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유로 한 선생님에게 경고를 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세월호 1주기 추모문화제에 함께 참여하자는 메일을 돌렸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동국대 이사회는 두 선생님을 다른 학교로 전보발령을 했다. 두 분 선생님의 이견은 듣지 않은 상태였다. 두 선생님은 강제전보를 수용할 수 없기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전보발령을 결정한 동국대 이사회는 "일상적인 조치일 뿐 징계성 전보발령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동대부고 교장이 ‘경고’라는 징계를 했고, 이사회 회의록에도 두 선생님에 대한 징계성 전보발령임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1주기 때는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연관된 수업을 하라고 지침이 내려간 상태였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그 아픔을 나누고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에 그것을 빌미로 한 징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송곳>을 보여 준 선생님에 대한 징계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보낸 경고장을 보면 드라마 <송곳>을 보여 준 것이 ‘비교육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사회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중 절반은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당사자이거나 혹은 당사자가 될 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이해하고 권리찾기 방법을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교육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드라마를 보여 준 것이 ‘비교육적’이라면 동대부고에서 생각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런 교육현실은 노동자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현실의 반영이다.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적정임금’보다 더 낮은, 생활이 불가능한 임금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왜곡된 현실은 교육에도 반영돼 현행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에는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일자리를 감소시킨다"고 서술돼 있는 경우도 있다. 헌법 제33조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창조컨설팅을 비롯한 노조파괴 전문업체들이 버젓이 등장하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헌법적 권리인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을 ‘사회 갈등 요소’ 사례로 제시하기도 한다.

굳이 독일과 프랑스나 미국 초·중·고 교과서에 노동과 인권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학생들에게 모의교섭 형태로 단체교섭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익히게 하는 것은 교육의 의무다. 한 사회는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로 이뤄진다. 그 노동의 가치와 권리를 가르치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지 가르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키우는 기초적인 교육의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헌법 정신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하는 시대다. 동대부고 선생님의 징계성 전보발령은 ‘노동’을 바라보는 교육계의 인식이 얼마나 천박하고 친자본적인지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송곳>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현실을 보여 준다. 숨죽이고 있던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아를 되찾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서는지를 보여 주는 드라마다. 교과서에서 담지 못하는 살아 있는 현실의 노동자들, 교과서의 죽은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는 이들을 담은 살아 있는 교과서다. 이것보다 훌륭한 교과서가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도록, 노동의 주체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허울 좋은 수많은 비정규직 대책보다 훨씬 훌륭한 대안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징계성 전보가 강행돼서는 안 된다. 동대부고 교장과 동국대 이사회는 노동자들, 특히 권리를 지켜기 위해 싸워 온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강제전보를 되돌려야 한다. 교과과정에 ‘노동인권’과 ‘세월호 참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계종이 그동안 고통받고 상처받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비정규직에 대해 손을 내밀었던 그 진정성을 믿기에 다시 한 번 간절히 요구한다. 적어도 동대부고가 ‘교육’을 하는 곳이라면, 동국대 이사회가 부처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곳이라면 두 분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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