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기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첫 번째 밤

퇴근 후 200번 버스를 탔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저물어 가는 3월 말의 버스 안은 때늦은 히터로 후텁지근했다. 나는 퇴사자인 A와 함께 기자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다. 제보 글을 보낼 기자들의 명단이었다. 왠지 그동안의 일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스스로 무엇인지도 모를 일들을 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나는 사장에게 "내일부터 물류창고로 출근하라"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전날 회사의 권고사직을 거부했던 기억이 스쳤다.

나는 출판편집자다. 사실 출판편집자와 물류창고의 연관을 설명하는 건 약간 까다로운 일이다. 자신이 만든 책들이 창고 랙(rack)에 꽉 들어찬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편집자도 많을 테니까. 그날은 그렇게 자꾸만 까다로워지는 마음으로, 웃으며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직원 전체에게 인사를 하는 건 회사에 처음 왔을 때와 떠날 때뿐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걱정 반 놀람 반. 내가 하나씩 지켜본 직원들의 얼굴은 그랬다. 박스로 싼 짐을 집으로 보냈다. 그걸로 끝. 내일부터는 파주의 어느 한적한 곳에 위치한 물류창고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직장을 잃은 것도, 월급을 떼인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그렇고 그런 흔한 일로 느껴졌을 수 있고, 그래서 ‘싸우겠다’는 결심을 한 내가 낯설었다. 이미 사장은 몇몇 사건으로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예컨대 회사는 사무실 내부에 CCTV 설치를 시도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직원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그때 나는 내가 사장에게 노동자로 대우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새로 온 문학팀장과도 그랬다. ‘까라면 까는’ 직원이 되는 것. 나는 그들이 착한 직원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사장이나 상사의 지시에 딴죽을 거는 건 그가 나쁜 직원이라는 의미다. 이런 생각은 대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폭력적 논리로 변모한다. 모두가 ‘착하게 남거나, 나쁘게 떠나야’ 하는 일터. 첫 직장이 내게 준 인상은 그랬다.

A와 명단을 정리한 후 언론사에 제보 메일을 보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입사한 이후 정신없이 일하며 보낸 밤들이 그제야 떠올랐다. 연장·야간근로수당은 꿈도 못 꿨지만, 약간은 재미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약간의 재미가 대부분의 직장인들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할 테지. 사직서를 몰래 쓰는 순간에도 그들은 ‘그래도 할 만하잖아’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재미와 맞바꾸는 건 너무도 컸다. 나는 이제 재미와 맞바꾼 것의 일부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며칠 뒤엔 고용노동부에 ‘근로계약서 미작성·미교부’로 진정을 넣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할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알 수 없는 낙관과 무리에서 떨어진 짐승의 외로움 같은 것들이 뒤섞인 채 밤은 깊어졌다. 그동안 내가 SNS를 통해 ‘좋아요’했던 수많은 노동자의 얼굴, 자신의 일터로부터 말소당한 그들의 얼굴에 언젠가 갑자기 들이닥쳤을 바로 그 밤이었다.

두 번째 밤

㈜자음과모음은 종합출판사다. 문학·인문·청소년·실용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 출판해 왔다. 이렇듯 다양한 책이라도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에는 그저 종이 뭉치일 뿐이다. 수많은 종이 뭉치들이 창고에 있었다. 나는 그게 책의 물성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출판노동을 하면서, 그리고 물류창고에서 약 4개월간 일하면서 느낀 것은 책의 물성 따위는 출판산업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어떤 이들에게 책의 물성은 전혀 다르게 정의된다. 그들에게 책은 상품이다. 잘 만들고, 잘 포장해서, 잘 유통시키면 되는 것이다. 나는 창고에서 일하기 전까지 편집자로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셈이다. 돌이켜 보면 그간 나는 잘 읽히기 위한 책이 아니라 잘 팔릴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읽는 것’과 ‘파는 것’은 너무 쉽게 하나의 가치로 영합한다. 그 이외의 가치는 하등 필요가 없다는 듯이.

출판계는 영세하고, 영세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노동조건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자음과모음의 전 대표이사였던 황광수 문학평론가가 이번 사건이 있은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출판계에선 근로계약서를 따로 쓰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언급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는 그동안 이런 관행과 계속해서 싸웠고, 걸음마 단계에 정체된 출판계의 노동조건을 변화시켜 왔다. 이런 노력의 자장이 자음과모음 부당전보 투쟁에까지 미친 것은 나에겐 꽤 다행한 일이다. 나는 감히 출판노동자 전체를 생각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내 싸움이 작은 파문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6월1일 자음과모음 부당전보 사건(서울2015부해895) 심판회의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많은 이들이 기뻐해 줬고, 나도 잠시 기뻤다. 그동안 기뻐할 만한 순간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병철 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와 2억여원의 민사 손배소를 당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만큼 고민도 늘어났다. 이어 투쟁하는 이들이 겪는다는 불면과 우울이 찾아왔다. 괴로운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다들 알고도 날 이해해 줬을 거다. 같은해 7월27일 나는 마침내 본사로 돌아왔다. 회사는 ‘복귀명령서’라는 문서를 통해 본사로의 출근을 ‘명했다.’ 돌아온 회사에는 이번 사건을 통해 나와 척을 지게 된 직원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이 회사 주장을 대변하며 작성한 진술을 수없이 읽었고, 그만큼 슬퍼졌다. 다들 불행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다시 회사로 복귀한 날 밤, 나는 그들의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직원들을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들의 불행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싸움이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세 번째 밤

어느덧 다시 겨울이다. 월·수·금 점심시간마다 사옥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고, 회사와는 자발적 대화 시도가 무산돼 단체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산별노조가 조합원 1인이 속한 개별 사업장과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마치 일상처럼 모든 일이 흘러갔다. 그사이 사장은 민·형사 고소를 슬쩍 취하했지만, 회사는 분명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 편집업무는 교정·교열로 한정되고, 조직에서 나를 격리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그 결과 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외주노동자 처지가 됐다.

회사와 첫 번째 교섭을 마친 현재, 나는 회사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네 싸움의 끝은 어디까지냐고, 너의 목표와 생각은 대체 뭐냐고 묻는 질문들. 난 이런 질문을 위해 친절한 대답을 준비해 놓지 않았지만, 지금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내가 언젠가 싸움을 멈추게 된다면, 그건 분명 내가 잘못하는 거라고. 왜냐하면 지금 여기 '헬조선'의 노동자는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결코 싸우기를 멈출 수 없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언젠가 내가 직원들과 다시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할 때, 이곳의 조건들이 약간은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코흘리개 신입 직원에서 ‘폭로하는 내부자’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회사와의 싸움은 1년이 다 되도록 현재진행형이다. 나와 같은 처지를 겪는 노동자가 흔치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싸움을 지속하면서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들이 언젠가 누구에게든 찾아올 거라 믿는다. 일터에서 떠나는 밤과 다시 일터로 돌아온 밤을 지나, 마침내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서의 세 번째 밤은 온다. 밤은 내일의 노동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지난 낮의 노동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낮의 노동이 부당했다면 오늘 당신의 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내일의 아침도 그럴 테니까.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세 번째 밤은,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의 첫 번째 밤이리라. 부디, 무사한 밤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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