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가장 큰 정치이슈 중 하나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샌더스는 전국 여론조사에서 이제 힐러리 클린턴과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의 전통적 엘리트들은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 자체와 그의 공약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고 한다. 샌더스가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민주당 노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샌더스 공약을 공개편지와 언론기고를 통해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클린턴·오바마 백악관의 경제자문들이 공개편지를 띄웠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이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샌더스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샌더스의 핵심 공약은 전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과 대형은행 해체다. 샌더스는 폭리를 취하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민간의료보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대체하면 국민 의료복지도 높아지고 의료비 지출도 오히려 준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제럴드 프리드먼이란 경제학자는 샌더스의 국민의료보험이 경제성장률도 1% 이상 더 높일 수 있다고 경제모델로 증명하기도 했다.

샌더스는 월스트리트 대형은행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영향력으로 미국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은행들을 투자은행·일반은행으로 분리하고, 또 너무 큰 은행들은 아예 작은 단위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경제학자들은 이 공약이 허황되고 실제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샌더스는 10년간 10조달러(한화 1경2천조원)가 필요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자에 대한 의료보험세, 상위소득 가구에 대한 특별보험료, 상위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배당과 자본이득에 대한 특별세 등을 세입계획으로 잡았는데, 이런 종류의 세금은 상품가격에 떠넘겨져 인플레이션만 일으킬 것이라는 게 그들의 비판이다.

결국 유럽처럼 사회복지재정 조달을 위해 소비세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 경우 중산층과 저소득층 세금 부담만 늘어 샌더스의 재분배 정책 자체가 효과를 상실한다고도 전망한다.

대형은행 해체에 대해서도 민주당 경제학자들은 비판적이다. 미국에서 월스트리트가 문제가 되는 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확인한 것처럼 '그림자 금융'이라 불리는 투기인데, 이건 은행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시장 규제를 촘촘히 하고, 미국 산업 전반을 재건해 은행들 스스로가 그림자 금융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파산하기에 너무 큰 은행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이다!”(“Too Big to Fail, Too Big to Exist”)라는 구호는 듣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금융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란 비판이다.

미국 민주당 성향 경제학자들의 비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게임 룰 안에서는 샌더스 공약이 가지는 함정이 분명 존재한다. 전국민의료보험 정책을 보자. 미국은 세계에서 의료비 지출규모가 가장 큰 나라다. 단지 보험체계 문제가 아니라 병원들이 모두 영리화돼 있는 탓이 크다. 즉 민간보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바꾸면 이들 민간의료자본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효과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진짜로 국민건강에 관한 변화를 원한다면 영리병원을 공공병원으로 교체하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을 공적으로 통제할 방안을 함께 찾아야만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신성 영역인 소유권을 건드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완전 상업화·영리화돼 있는 미국 의료산업 개혁은 자본주의적 틀 밖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 개혁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경제학자들의 비판처럼 네트워크로 고도화된 민간은행은 정부보다 훨씬 똑똑하고 빠르다. 이들을 분리하더라도 그들은 새로운 투자기법과 규제가 없는 영역을 반드시 찾아낸다. 심지어 금융이 세계화된 시대에 미국 내에서의 규제는 효과도 크지 않다. 따라서 이들을 실제 통제하려면 결국 은행 자체를 국유화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생산적 투자처가 없어 과잉자본이 넘쳐나는데 건전한 은행이 존재할 리 없다. 이 돈을 가지고 투기를 해야만 그나마 수익을 낸다. 금융세계화는 제도적 ‘실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샌더스가 민주당 경제학자들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선 온건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실제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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