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주말 커다란 뉴스가 또 터졌다. “발레오만도지회가 금속노조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뉴스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산별노조의 하부기관인 지부·지회가 스스로 산별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특히 주말판 보수언론)에서는 '족쇄·노예계약·해방'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 가며 극렬하게 환영하는 기사를 쏟아 냈다.

판결문을 급히 구해 확인했다. 결론은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뒤로하더라도 지금으로선 발레오만도지회가 금속노조에서 '탈퇴'한 것도 '족쇄'에서 풀린 것도 아니다.

기존에 대법원은 “지부·지회가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자적인 단체교섭을 벌이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이 있어 기업노조에 준하는 실질을 갖는 경우”에는 지부·지회가 조직형태변경을 포함한 독자적인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번 전원합의체에서는 “독자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더라도 법인 아닌 사단으로 실질을 갖고 있어 기업노조와 유사한 근로자단체로 독립성이 인정되는 경우”를 독자적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할 수 있는 요건으로 추가하고 있다. 대법원은 “발레오만도지회가 위와 같은 추가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을 뿐이다.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판결 내용을 확인하고 한편으로는 안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무려 5명의 대법관이 밝힌 것처럼 “사용자가 대립관계에 있는 산별노조를 축출하고 우호적인 기업노조 설립을 유도하고자 조직형태변경을 통해 기업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은밀하게 지원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이러한 지적이 바로 발레오만도지회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다수의견은 ‘산별노조를 통한 집단적 단결권’보다 ‘근로자의 노조선택권’을 우위에 둬야 한다고 봤다. (노동현장에서의 치열한 노사관계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일견 그럴듯한 논리다. 그러나 이 사건과 노동현장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린 판결인지 의문이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아마도 대법원이 의도하지 않은 커다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노동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여년간 노동관계에 관한 새로운 제도와 판결이 현장에 적용되는 방식을 보자. 새로운 제도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보수언론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의적으로 재단해 홍보한다. 이에 더해 노동부와 나쁜 사용자는 한술 더 뜬다. 아예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실제 타임오프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도입,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현장에서 경험하지 않았나. 몇몇 사용자는 판결 취지를 왜곡한 뉴스만을 좇아 이른바 어용노조를 조장하거나 이에 준하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나름의 잣대로 크기와 무게를 잰다면 2010년도 시행 사업장 단위에서의 복수노조 설립 및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도입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통과된 예와 견줄 만하다. 그만큼 노동 3권과 밀접하다는 얘기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2010년 당시 도입된 제도는 복수노조 설립 허용이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라는 사실을. 그 결과 노조설립의 자유가 확충된 것이 아니라 기존 노조 간 사활을 건 경쟁만이 급증했다는 것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노조선택의 자유(전원합의체 다수의견)가 아닌 이보다 더 본질적인 단결권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전원합의체 소수의견)는 걱정이 든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다섯 해를 맞는 요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았나. 특히 영세·중소 사업장을 터전으로 하는 소규모 노동조합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그야말로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가 돼 버렸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앞으로 어떻게 변질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조금은 소홀했던 노조법을 위시한 집단적 노사관계법을 개선하고 지키는 데 노동자들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임금과 해고로 대변되는 개별적 근로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개별 법률만으로는 사용자의 부당한 해고와 차별·저임금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데 있다. 노동조합이 낱개의 법률보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이론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과 노동 3권의 존재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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