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매일노동뉴스 기획위원

중국 베이징에는 영국인 닉 보너(Nick Bonner)가 1993년 설립한 북한전문 여행사인 ‘고려여행사’가 있다. 이 여행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북한의 이색적인 상품을 출시했는데,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30킬로미터 거리인 평안남도 평성에 위치한 ‘대동강의류공장’ 방문도 상품에 포함됐다(2014년 8월6일 CBS노컷뉴스).

여행사 프로그램으로 2014년 7월 호주인 여행작가인 앤절리 토마스(Anjaly Thomas)가 해당 공장을 방문한 기록을 그녀의 블로그에 올렸다(2014년 10월). 2015년 7월에는 또 다른 호주인 사업가 닉 할릭(Nik Halik)이 같은 공장을 방문했다. 이들은 대동강의류공장에서 호주 유명 스포츠의류 브랜드사인 립컬(Rip Curl)의 상표와 'Made in China'로 라벨을 붙인 겨울 스포츠의류인 스키복 생산 사진, 공장 내부 동영상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이를 호주의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 소속 시드니모닝헤럴드지가 "립컬이 북한의 노예노동(slave labor)을 이용하고 있다"고 기사로 다뤘다(2016년 2월20일자).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유명 스포츠의류 및 신발 브랜드(brand) 회사들은 자체 제품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저임금은 기본이고 노동규제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거나 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개발도상국가에 생산거점을 마련해 자사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게 하는 바이어와 공급업체(buyer-supplier) 계약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 시장에 가까운 중남미 국가들은 이들 브랜드사들의 전략적 생산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브랜드사에 납품하는 회사들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벤더(vendor)’회사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해외진출 기업들이 이들 유명 브랜드 회사들의 스포츠의류와 신발의 벤더사를 중국을 포함해 베트남·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캄보디아·미얀마 등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가동하고 있다.

저임금과 허술한 노동보호를 배경으로 진출하는 벤더사에서 최저임금 지급과 열악한 노동조건 및 노동권 침해 문제로 노사분규가 발생하고 이것이 국제적인 이슈가 된 지는 꽤 오래됐다. 선진국의 소비자운동과 노동운동의 비판에 매우 민감한 스포츠의류와 신발이기 때문에 브랜드사들은 자체 행동강령(code of conducts)을 정하고 벤더사들에게 결사의 자유와 아동노동금지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뿐만 아니라 산업안전에 관한 조건 등을 준수하도록 하는(social compliance)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이들 브랜드 회사들은 벤더사에서 노동 관련 문제가 생기면 납품업체의 계약 위반을 내세우며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유감 성명서를 발표하는 선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일감이 많이 몰릴 때나 혹은 노동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다른 공장에 재하청을 주는 일종의 아웃소싱 관행이다.

북한에서 생산된 립컬의 스키복은 중국에 위치한 벤더사가 북한 대동강의류공장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 다시 말해 국경을 초월한 아웃소싱 형태로 제작됐다. 벤더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재하청업체 임금과 노동조건이 벤더사의 임금과 노동조건보다 더욱 열악할 것이라는 추측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립컬은 이 사실을 2015년 겨울상품(스키복 약 4천벌로 보도되고 있음)이 전부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발표하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벤더사 잘못으로 책임을 돌리면서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수준으로 스리슬쩍 넘어가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하면 소비자들의 비난과 외면이 뒤따르기 때문에 립컬은 기사가 폭로되자마자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리스크관리(risk management) 차원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은 풀렸지만 미얀마가 국제사회에서 군사독재통치로 제재를 받고 있을 당시에도 일부 경공업 업체들이 미얀마에서 제품을 생산해 다른 국가에서 만든 것처럼 원산지를 바꾼 라벨로 시장에 공급한 적이 있다.

북한의 경우도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있는 벤더사가 북한 대동강의류공장에 재하청을 준 것도 문제지만, 세계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노동기본권과 적절한 임금 지급이 모니터링되는 않는 나라에서 호주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립컬이 노예노동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보도에 세계의 소비자들, 특히 호주의 소비자들과 국민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이러한 의류공장에 재하청한 아웃소싱 사례가 립컬 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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