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남미의 빈국, 볼리비아 제3의 도시인 코차밤바의 수도 민영화는 대표적인 민영화 스캔들 사건으로 유명하다. 벡텔이라는 미국계 회사가 공공수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기존 상수도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빗물을 받는 것조차 허가를 받도록 법 개정을 요구했고, 민영화 이후 수도요금을 400%나 올리면서 국민의 대규모 저항에 부딪혀 민영화가 무산된 사건이다. 동아일보는 2011년 11월3일자 기사를 통해 볼리비아의 수도 민영화와 관련한 사태를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부와 해외 사업자 간의 결탁에 가까운 계약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민영화에 지극히 우호적인 보수언론조차 민영화를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부와 자본의 결탁"으로 규정할 만큼 많은 나라에서 민영화는 스캔들의 대명사였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권은 이른바 개혁을 추진하면서 아르헨티나 공기업의 95%를 민영화했다. 이 과정에서 고위 관료를 포함한 지도층은 국제 투기자본을 비롯한 다국적 자본과 부패 고리를 구축하고 민영화 과정에 개입해 뒷돈을 챙겼다. 이렇게 해서 챙긴 막대한 뒷돈을 해외로 빼돌리면서 경제위기를 자초했고 정권의 몰락을 넘어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영화 과정의 스캔들은 비단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대란의 주범인 엔론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또한 부패 커넥션의 산물이었다. 전력민영화와 관련해 필자와 자주 만났던 미국 시민단체의 전력민영화 전문가는 엔론이 전력을 투기상품화하는 중심전략으로 거래에 대한 정부 규제를 없애고자 했다고 필자에게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엔론은 2000년 선거기간 동안 240만달러를 썼고, 전력산업 규제완화 법안을 비롯한 자신들의 사업에 필요한 법안 통과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수십만달러에서 수백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엔론의 로비로 정치인들은 엔론이 원하는 규제완화 법안과 제도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 이를 통해 엔론은 사기에 가까운 불법적인 전력거래를 일삼으며 캘리포니아 전력대란을 초래함으로써 주민과 주정부에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혔다.

인도에 진출한 미국계 다국적 전력회사 AES는 1999년 인도 오리사주 진출 직후 사이클론으로 인해 대규모 설비피해를 당하자 정부를 상대로 6천만달러의 복구비용을 요구하고 주지 않을 경우 전기요금을 세 배나 올리겠다며 협박해 결국 4%의 요금인상과 피해복구를 위한 융자금을 지원받았다.

일본의 경우는 조금 더 극적이다. 전후 맥아더 사령부의 군산복합체 해체로 전력산업을 9개 지역별 회사로 민영화했으나, 도쿄전력을 비롯한 민간전력회사는 정치인·관료·언론사 등 광범위한 대상과 오랫동안 끈끈한 커넥션을 유지해 왔고 이를 토대로 각종 특혜를 받고 규제를 피해 가면서 세계 최고의 전기요금으로 막대한 이윤을 구가했다. 후쿠시마 사태는 이 부패 커넥션의 고리를 깨고 투명한 경영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일본 정부의 선택은 그동안의 신중함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전면 경쟁체제로의 전환이었다.

올해 4월부터 전력산업에서 전면적인 경쟁체제가 시작될 예정인데, 과연 일본의 선택이 부패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무능한 정책의 결과로 재현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전력산업 경쟁체제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 시점에 오히려 소매경쟁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과연 신중한 정책결정인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많은 공기업들이 민영화 과정을 밟았다. 돌이켜 보면 식민지 수탈과 강제노동에 버금가는 노동력 착취를 통해 축적된 일제 자본은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소위 ‘적산불하’ 과정을 거쳐 재벌자본의 본원축적이 됐고, 그 재벌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한 커넥션으로 국민이 피땀으로 조성한 국가 자산을 사실상 특혜로 불하받으면서 체제를 공고히 했다. 항공·정유·통신·광산·철강·중공업, 그리고 전력산업에 이르기까지.

관료주의적 폐해의 부정적 이미지를 교묘하게 이용한 정치적 수사인 민영화는 그 이미지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포장한다 할지라도 국가와 공적 소유 자산을 특정 자본가의 손에 넘겨주는 사유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 전체를 비효율·부패의 온상으로 여론을 왜곡해 재벌자본을 비롯한 사적 자본에게 넘겨주는 사유화를 민영화로 둔갑시켜 국민을 현혹해 온 것이다.

공공부문의 많은 문제가 바로 ‘관료에 의한 통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철저히 숨기고 오히려 이를 민영화 명분으로 둔갑시켰다. 공공부문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요구해 온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대안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히려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앞세운 관료적 통제구조를 강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들이 망친 공공부문을 개혁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