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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의 불법파견 판결문을 읽는다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겼다. 진심으로 이렇게 쓰고 싶었던 사건이었다. 2011년 7월, 소장을 제출했다. 수도 없이 순천을 다녀왔었다.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제철을 상대로 청구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사건이었다. 마침내 판결이 지난 18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선고됐다. 선고일에는 대리인 변호사가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서 선고가 있는 결정의 날에는 나는 순천에 가지 않았다. 이날 법정에 참석했던 노조간부로부터 결과를 들었다. 원고들 모두가 불법파견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법원은 자동차 생산공정을 중심으로 제조업 사업장의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라고 판결해 왔다. 2007년 6월1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사건에 서울중앙지법이 최초로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한 뒤,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라고 판결해 왔다. 나아가 자동차 생산공정에 대해선 한국지엠·쌍용차 등에 관해서도 인정했었다. 지난 2월 초에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사내하청 근로까지도 파견근로라고 서울중앙지법은 판결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의 추세로 볼 때 이렇게 자동차 생산업체라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판결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지 자동차 생산업체가 아니었다.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던 자동차 생산공정과 다름없이 사내하청 근로자는 현대제철 순천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우리의 주장에 따라 판사가 판결문을 쓸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크레인 운전 등 사내하청 근로의 내용에서 별반 다를 게 없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건에서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이미 같은 법원에서 판결한 바가 있었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는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데 직접 판결문을 쓸 수가 없는 나는, 판결 이유로 쓸 주장을 소장과 준비서면에서 쓰면서 원고 노동자들이 이겨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16년 2월18일, 이겼다.

2. 현대제철에서 정규직이 하지 않는 크레인 운전 등의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가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는가. 크레인 운전, 물류진행 업무, 코일포장, 기계 정비, 전기 정비, TWB(경량화) 운전, 롤 정비, 고철장, 유틸리티(에너지·냉난방·폐수 처리), 실험실 등 현대제철의 사내하청업체 전 공정이 파견근로로 인정될 것인가. 이런 쟁점을 두고서 지난 4년여 동안 원·피고 노사 간에 법적공방을 벌여왔다. 인정되고, 모두가 인정됐다. 이미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포스코에서 크레인 운전 등을 수행하는 사내하청 근로에 관해 도급계약의 수급업체(사내하청) 근로라며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했었지만 그에 구속되지 않고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자는 파견근로를 해 온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 생산공정을 넘어 제철소에서도, 혼재 여부와 무관하게 그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업체 근로의 파견근로 해당성을 대단히 넓게 인정했다. 법원이 우편으로 보냈다는 판결문은 사무실에 도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판결문을 받았다. 어떻게 구했는지 기자가 코멘트를 해 달라며 메일로 보냈던 것이다. 나는 판결문을 읽었다.

3.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김형연 부장판사)는 현대제철(순천공장·옛 현대하이스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사용이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며 구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2006년 개정되기 전 법률은 2년을 초과해서 근무한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간주하도록 정하고 있었음)에 따라 2년을 초과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원고 109명은 현대제철의 근로자이고, 그 외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원고 52명은 현대제철이 근로자로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광주지법 순천지원 2011가합5128 외). 주된 쟁점에 관해서는 재판부는 판결에서, 원청업체 근로자가 수행하지 않는 제철소의 크레인 운전 등의 업무를 하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도 파견근로라고 판단하고, 크레인 운전, 물류진행 업무, 코일포장, 기계 정비, 전기 정비, TWB(경량화) 운전, 롤 정비, 고철장, 유틸리티(에너지·냉난방·폐수 처리), 실험실 등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업체의 전 공정에서 수행하는 사내하청 근로자의 근로 모두가 파견근로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특별히 주목해서 읽었던 부분이 있었다. 나는 생산시스템 자체를 파견근로의 주요한 지표라고 주장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어떻게 판결했는지가 궁금했다. 판결문에서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수행방식”이라는 항목으로, “피고는 순천공장의 원자재 관리, 품질관리, 공정계획에 따른 작업량과 작업순서 편성, 조업 진행현황과 실적관리, 출하관리 등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반 관련 정보가 기록·처리되는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을 이용해 원자재 입고부터 최종 생산품 출하까지 과정을 관리·운영하고 있다”며, “위 시스템은 주식회사 포스코·동부제강 주식회사 등 제조업체에서 업무효율성을 위해 도입한 전산시스템으로 피고 회사 관리팀 및 진행실 직원들(피고 회사의 공장근무자는 관리직과 기능직으로 구분되는데, 원고들과 같은 협력업체 근로자와 구별해 ‘직원’이라고 지칭한다)이 MES를 통해 작업물량 및 정보를 입력하면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각 현장사무실에 배치된 MES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작업을 완료한 후 MES에 작업결과를 입력하면 피고 직원들이 그 결과를 검수”하며, “피고는 기계정비·전기정비 작업은 SAP(자원관리 시스템인 ERP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업명이자 해당 시스템을 의미한다) 전산장치를 통해 협력업체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기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피고 회사 직원들은 MES를 구축해 작업물량·작업위치 등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해야 할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줬고, 실시간으로 근로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MES를 통해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이들의 업무수행상태를 관리했던 것”이라고 판결문은 쓰고 있었다. 이에 대해 피고가 “MES에 관해 단지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완료된 업무를 검수하며, 피고 회사와 협력업체 사이에 작업정보를 공유하고,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반 정보가 기록·처리되는 자동전산시스템으로, MES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지시하거나 업무를 관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이러한 피고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에서 “협력업체의 업무는 피고로부터 발주받은 업무를 독자적인 기술과 작업방식을 가지고 일을 완성해 결과물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냉연강판 생산공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정한 작업내용과 작업시간·작업장소의 틀 안에서 피고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이용해 냉연강판을 생산하기 위한 노무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 특성과 MES를 통해 이뤄지는 피고의 작업 요청의 내용과 빈도, 앞서 살펴본 피고 회사 직원들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관계 등으로 봤을 때, MES는 단순히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일의 결과에 대한 검수를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하는 PDA 단말기와 같은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측면의 기능이 강화된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주장했던 바대로 판결문에 쓰고 있었다. 이처럼 이번 판결에서는 원청의 생산관리시스템에 의한 사내하청 근로자의 작업수행을 파견근로의 중요한 지표로 판단했다. 이를 통해서 이번 판결은 현대제철을 두고서 판시했음에도 현대제철에 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4.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내하청의 작업에 관해 원청이 통합된 생산관리시스템에 의해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제철소든, 조선소든, 전자사업장이든 사내하청업체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전산이든 아니든 원청과 사내하청 간에 통합된 시스템으로 생산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원·하청 생산시스템 자체를 직접 파견근로의 판단 지표로 파악했다는 것이 특별하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판결은 자동차 생산공정을 중심으로 파견근로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그 판결을 딛고서 이번 현대제철 비정규직 판결은 자동차를 넘어 제철소 등 제조업 전반의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제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법으로 선언된 것 이상을 쟁취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행동으로 말해야 한다. 파견법 개악을 노동개혁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거부하며 행동으로 말해야 한다. 사내하청 근로를 철폐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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