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4년 만에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국회도서관 장기열람증부터 만들었다. 국회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일일이 신분증 내고 임시출입증 받는 게 불편해서다. 의원회관 토론회에 갈 때도 지랄 같다. 매번 종이에 출입이유와 출입하는 의원실을 적고 신분증을 맡겨야 하니.

출입하는 절차가 까다로운 관공서치고 일 잘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의원 나리들은 그렇게 일은 안 하고 똥폼만 잡으면서도 특권은 엄청 누린다. 포털에 ‘국회의원이 되면’만 치면 ‘국회의원이 되면 누리는 혜택과 특권’이란 글이 족히 수십 개는 뜬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무려 200가지가 넘는다. 해외방문 때 공항 귀빈실과 VIP용 주차장을 이용해 출입국 절차가 간편하고 차량유지비와 유류비도 받는다.

철도까지 무료로 이용하던 때엔 1년에 100번 가까이 공짜로 KTX를 타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논란이 되자 2006년 초 당시 이계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의 철도 무임승차를 없애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기자회견까지 하며 공짜 KTX나 공짜 항공기를 안 타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한 해에만 300여명의 국회의원에게 쓴 철도 무임승차 비용이 4억8천여만원이나 됐다. 근거 없는 규정에도 의원 나리들은 3~4년 전까지 KTX를 무료로 타고 다녔다. 국회사무처가 예산을 지원하면서까지. 기자회견까지 했던 진보정당 의원들도 규정에 없는 관행이 폐지되기 전까지 여느 의원들과 똑같이 공짜 혜택을 누렸다.

‘의원 특권’에 비난여론이 들끓자 국회사무처는 지난해 여름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해명했다. 욕먹는 당사자가 나서야지 애꿎은 사무처가 나서 왜 이런 보도자료까지 내는지 안타까웠다.

지난해 해명 중 한 대목만 소개하면 이렇다. ‘국회의원의 민방위·예비군 훈련 면제특권’에 대해 “국가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훈련에서 제외하는 민방위기본법 제18조와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5조에 따라 국회의원과 교육위원·경찰공무원·소방공무원까지 훈련에서 제외되기에 이를 국회의원만의 특권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도둑 잡고, 불 끄는 경찰·소방공무원이 민방위훈련 안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뭐 하는 일이 있다고 민방위 훈련까지 면제받는가. 정작 면제받아야 할 사람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 소상공인들인데.

영국 집권 보수당 하원의원인 월리엄 랙(28)이 비싼 런던의 집값 때문에 부모 집에 얹혀살게 됐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조선일보 2월12일자 16면, ‘英의원, 집값 못 대 부모집 얹혀살기로’)

2010년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 국회의사당 앞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국회의원들이 줄을 이었다. 영국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이 많다. 도심 교통난을 헤집고 가는 데는 자전거가 으뜸이다.

우리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 국회도서관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면 불과 5년 전까지 경비 서는 의경이 “경내에선 자전거를 타시면 안 됩니다” 하고 으름장을 놨다. 지금도 여의도 일대 도로 하위차선엔 자전거 우선통행로를 만들었지만, 그 위에 버젓이 주차된 의원 나리들 검은 승용차를 자주 만난다.

왜 의원들은 검은 차만 탈까. 디자인 감각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두 달 뒤엔 이런 획일화된 정치문화를 확 깨 줄 의원이 한 명이라도 당선됐으면 좋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