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선근 공공교통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엄마 여기 불났어. 연기가 가득 찼어.”

“엄마가 갈게. 조금만 기다려.”

“연기가 가득 차 올 수가 없어.”

2003년 2월18일 화요일 오전 9시53분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중앙로역 지하 3층. 중앙로역에 도착한 1천79호 전동차 안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4분 뒤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진입한 1천80호 전동차로 불이 옮겨붙었다. 화재로 전기가 끊겼고 지하에서 시민들이 연기와 유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승강장에 정차한 지하철에 탑승했던 승객 등 192명이 사망했고, 151명이 부상을 당했다. 21명은 실종됐다. 지하철에서 근무하던 직원도 7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뒤에 △불에 잘 타는 내장재로 제작된 전동차 △1인 승무 및 부족한 안전인력 △비상등과 비상유도등 같은 방재시설 부실 △부실한 재난대응 매뉴얼 및 교육훈련 같은 사고원인이 밝혀졌다. 불에 잘 타는 전동차와 안전을 경시한 인력운용 등 지나친 예산(비용) 절감 위주의 잘못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사고였다는 얘기다.

사실 대구지하철은 건설 과정부터 각종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단계 대구지하철은 1997년 11월26일 개통됐다. 건설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92년 1월16일 1호선 6공구 공사장 붕괴로 1명이 다쳤고, 95년 4월28일 상인동 1호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로 출퇴근 시민과 학생 10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두 배가 넘는 시민이 다쳤다. 같은해 8월에는 지하철 1호선 12공구 건설공사장 폭약 폭발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0년 1월22일 지하철 2호선 신남네거리 공사장 붕괴로 버스가 추락하면서 4명이 죽거나 다쳤다.

잦은 사고는 건설 과정부터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박창화 인천대 교수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지하철을 건설할 때 안전시설 투자에 건설비의 25% 정도를 쓴다. 반면 우리나라가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들이는 안전비용은 건설비의 5~8%에 불과하다. 안전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정부는 안전 관련 비용을 줄이고 안전규제를 완화하며 필수 안전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노후 차량과 시설물, 1인 승무, 중앙정부의 민영화 정책과 경영평가로 철도·지하철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지하철을 만들려면 법·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노후 전동차와 시설물 교체를 위한 안전예산을 확보하거나 2인 승무를 제도화하고 외주용역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안전문화·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이용자인 시민과 교통서비스 생산자인 노동자가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정부는 현장에서 일하던 기관사·관제·역무원 같은 말단 직원들에게 사고 책임을 전가했다. 이후 근본적인 사고예방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이런 책임전가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강력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큰 이유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과 철도·지하철노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국의 기업살인법 같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시급하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노력과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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