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석 기자

“제왕적 경영진을 몰아내고 직원·조합원이 주인이자 중심인 협회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뜻깊었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노조 만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정희(44·사진) 대한산업보건협회노조 위원장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지난 5년간 노조가 이룬 성과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 위원장은 2011년 6월 동료 8명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 3월 재선해 지금까지 노조를 이끌었다. 조합원은 어느덧 800명을 넘어섰다.

“조합원이 100배나 늘었으면 잘한 것 아니냐”고 웃던 정 위원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 노조 탈퇴서가 수북이 쌓여 있던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5년 전 약속, 협회장 직선제로 지켜

협회는 사업자 위탁을 받아 사업장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반·특수검진을 시행하는 산업보건 전문기관이다. 전국 12개 시·도에 지부를 두고 있다.

협회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던 2011년은 조직 안팎으로 문제가 많았던 때였다. 당시 협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의 비리 문제가 잇따라 불거져 고용노동부 감사를 받았고 노동계에서는 비리집단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노조 설립 직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는 “개선하고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졌을까. 그 후 노조는 비리 임원 퇴진투쟁을 벌이고 협회장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대의원 간선제 정관 개정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28년간이나 장기 집권했던 최아무개 전 협회장이 물러났다. 협회장은 총회에서 직선으로 뽑도록 정관이 개정됐다.

정 위원장은 “내부감시 강화를 위해 감사직을 비상임에서 상임으로 바꾸고 협회장이 임명하던 상임이사도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며 “직원들이 대거 협회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임원 선출과 경영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인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꿈꾸기 시작하다

노조 활동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노조 설립 후 6개월 만에 조합원이 380명까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협회 임원들이 2011년 12월부터 노조 탈퇴를 강요하면서 불과 두 달 만에 조합원이 100명 이상 줄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같은 양식으로 작성된 노조 탈퇴서가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 위원장은 “단체협약도 체결하지 못한 채 비리 임원진에 맞서 투쟁하면서 파업까지 준비했다”며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다시 힘을 모아 줘서 첫 단협을 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를 일으킨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제왕적 협회장과 비리에 대한 직원들의 분노,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바꿔 보자는 의지가 노조로 모인 것”이라며 “한때는 머슴처럼 눈치 보며 일만 했지만 노조와 함께 투쟁하면서 조합원과 직원이 주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심운택 회장을 비롯한 새 임원진이 취임하면서 조직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노조도 경영민주화보다 조합원 임금·복지향상 활동에 힘쓸 여유를 갖게 됐다.

노사는 지난해 △사내복지기금 설립 △선택적 복지제도 시행 △퇴직연금제도 도입 △직원 단체상해보험 가입에 합의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대부분 시행하는 제도인데, 협회는 노조 설립 후 4년이 지난 뒤에야 이러한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지난해 4월부터는 노사공동 경영혁신위원회를 구성해 협회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정 위원장은 “1963년 설립된 협회는 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폐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축적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한계가 있었다”며 “협회가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전산화해 사업장별·지역별·노동자(직업)별 특성에 따른 안전보건관리 계획을 세우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를 만들고자 노사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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