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한 산업단지의 근무환경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이 부동산 투기 용도로 변질되고 있다. 공장부지 용도가 변경되면서 토지거래가 증가하고 용지가격이 오르자 너도나도 땅장사에 열을 올린다.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고용의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공단 떴다방’이 만들어 낸 풍경=영하의 날씨에 두 명의 노동자가 16일 현재 6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구로공장 이전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해 12월10일 새벽 공장 내 16미터 높이의 철탑에 오른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장과 신애자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장이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2014년부터 구로공장 부지 매각과 공장 이전을 밀어붙여 지난해 매각을 완료했다. 공장부지 매각과 관련한 노사협상은 없었다. 두 명의 노동자가 고공농성에 나선 배경이다. 이들은 “회사가 부동산 매각 차익을 챙기기 위해 20~30년 동안 회사를 지킨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공장부지 매각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장부지 매각 추진 시점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서울 가산동 일대 서울디지털산업단지(3단지) 토지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시점과 맞물린다. 공단은 2013년부터 토지개발 가능성을 내비쳤고, 정부는 지난해 서울산단에 대한 구조고도화 사업을 승인했다.

공단의 토지개발 소식은 이 일대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사업주들에게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공장부지 용도가 산업시설에서 지원시설로 바뀌면 땅값이 치솟기 때문이다. 공장을 접고 토지를 팔아 버리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취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불로소득이다.

서울산단 지역 공시지가 상승률을 보면 지원시설인 키콕스 벤처센터(옛 공단 본사) 공시지가는 2000~2014년 사이 5.3배나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3단지에 입주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의 공시지가는 3.1배 올랐다. 서울산단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그림 참조>

심지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국가산단 관리업무를 위탁받은 공단도 부동산 매매 열풍에 동참하는 형국이다. 키콕스 벤처센터에서 대구 동구로 본사를 이전한 공단은 최근 키콕스 건물과 부지 매각을 진행 중이다. 그동안 공장부지 매각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를 요구했던 공단은 정작 본사 매각으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는 계획조차 내놓지 않았다.

◇정부 무관심에 암울한 제조업 미래=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풍산이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도시첨단산업단지(센텀2지구)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 발단이 됐다. 부산시·공사·풍산은 2020년 센텀2지구 완공을 목표로 188만제곱미터 면적의 반여동 풍산 부지에 9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새로 조성되는 첨단산업단지에 지식산업센터·마이스(MICE) 산업시설·복합연구단지를 세우고, 고층 주거시설과 쇼핑몰·특화병원을 유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 노동자들은 “첨단산업단지 조성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반발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관계자는 “실제로는 고층 주거시설을 만들어 개발이익을 챙기고, 영리병원의 또 다른 이름인 특화병원을 만들어 부산시민을 위한 공공의료를 내팽개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개발 과정에서 반여동 소재 피에스엠씨(옛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의 고용보장 방안이 거론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2011년 11월 정리해고된 뒤 3년여 만인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일터로 복귀한 58명과 나머지 노동자들은 또다시 길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놓였다. 이들이 일하던 도금공장이 지난해 원인불명 화재로 전소했는데, 회사측은 “공장을 재건할 이유가 없다”며 해당 노동자들을 상대로 순환휴업을 진행 중이다. 회사측은 최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득이한 사유로 사업 지속이 불가능하다”며 “휴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도록 승인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빈손으로 쫓아내겠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산업단지 재개발과 공장부지 매각에 대한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준도 노동자의미래 정책기획팀장은 “어느 사업주라도 토지개발 이익에 눈이 멀면 단기순이익에 집착하게 되고, 노동자들은 너무 쉽게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며 “국가를 먹여 살리는 핵심산업인 제조업을 유지·발전시키기는커녕 정부가 부동산 투기 붐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킨다면 국가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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