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재판장의 주문 낭독에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판결문이 송달되는 데에는 아마 1주일쯤 걸렸을 것이다. 상고기간 도과에는 14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정도 시간은 기다릴 수 있었다. 지난 5년의 시간에 비하면 말이다.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경영상 해고를 통보받은 것은 물경 5년여 전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담당하던 특정 업무를 외주화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협력업체로의 전직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협력업체로 전직할 경우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임금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협력업체로 전직을 거부할 경우 해고하겠다고 맞섰으며, 회사의 협박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경영상 해고를 당했다.

계절이 스무 번 바뀌는 동안 노동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 다시 고등법원으로 장소를 바꿔 가며 법정 투쟁을 이어 갔다. 그 결과 회사의 경영상 해고가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당하다는 법적 판단을 얻어 냈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수십년간 일한 직장에서 일할 기회를 잃었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받아야 할 임금도 지급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해고기간 중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직장을 황급히 구해야 했고, 어렵게 구직을 이어 가는 동안 더러 금융기관 대출을 구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남았다.

회사는 마지막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했다. 노동자들이 승소한 판결은 확정됐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원직복직을 기대했다. 그러나 회사는 해고 전 담당하던 원직의 직무가 모두 외주화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직무에 배치했다. 나아가 회사는 부당해고 기간의 임금조차 지급하지 않겠다며 이를 받고 싶다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이면 한 번은 변한다는 강산이 절반이 바뀌기를 기다려 자신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함을 인정받았지만, 부당해고의 상흔은 오롯이 해고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반면 회사는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함으로써 특정 업무를 모두 외주화해 간접고용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회사의 다른 소속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부당한 지시라도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십분 보여줬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도 5년여간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회사는 별로 잃은 것이 없다.

무엇인가를 잘못한 어느 주체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상대방 주체가 그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지금의 구조는 정의롭지 못하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시간은 자신들의 편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최근에 밝혀진 어느 방송국 고위간부의 녹취록에서 드러났듯이 "일단 해고하고 나중에 소송에서 패소하면 받아 주면 그만"이라는 사용자들의 정서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해고의 정당성이 사후에 법원에서 판단되는 현재의 구조를 감안하면, 사용자들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욕구를 사전에 견제하고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부당한 해고로 확정된 경우 사용자에게 사후적으로 추가적인 부담과 불이익을 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장기간 소요되는 노동소송 절차를 단축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해고사유가 없음에도 사용자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뤄진 부당해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지금 사용자의 편이지만 기실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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