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이런 식이죠. 저번에 한 번 했다가 부작용으로 원상복귀했잖아요. 그런데 또 한다고요?"

은행권 신입사원 초임삭감 얘기에 한 은행노동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호봉제 폐지와 성과연봉제 도입, 저성과자 교육·퇴출과 함께 신입직원 초임삭감을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교섭 안건으로 제시하겠다는 발표를 보고 한 말이다.

그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 문제에 대처한다며 추진했던 '잡셰어링'을 기억하고 있었다. 잡셰어링은 대졸 신입직원 초임을 삭감해 이 재원으로 신규채용을 확대하자며 내놓은 정책이었다. 당시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잡셰어링을 강구해 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서 시행됐다. 당시 대졸 초임은 20%씩 깎였다.

반강제적으로 잡셰어링이 시행되자마자 영업현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불과 입행 1년 차이로 적게는 700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씩 연봉을 덜 받는 직원들이 생기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하는 일은 같은데 급여는 적으니 차별과 박탈감에 '고스펙' 인재들이 속속 은행권을 이탈했다. 경영진도 속앓이를 했다.

그렇다고 잡셰어링의 궁극적 목표인 신규채용이 늘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나마 생긴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 인턴직이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백수 신세가 됐다. 결국 잡셰어링은 '싸구려 일자리 나누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삭감된 임금도 2년 만에 원상회복됐다. 요새 유행어로 '폭망(폭삭 망한) 정책'이랄까.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또다시 비용절감과 신규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신입직원 초봉삭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용자들은 초임삭감을 통해 얼마나 더 많은 신규채용을 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일자리 확대는커녕 '묻지마 삭감'으로 현장에 노노갈등만 부추겼던 2009년 잡셰어링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뭐라도 해야 할 상황까지 왔다고들 얘기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견 일리는 있다. 하지만 노동자 희생으로만 경영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놀부 심보'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취업난에 허덕이다 이제 겨우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신입직원들을 희생양 삼겠다는데 말이다. 어째 위기 타개책 하면 비용절감만 생각하는 구식 발상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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