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올해는 설마저도 다사다난했다. 여느 명절과는 달랐다. 정규방송에서는 연일 쉼 없이 "국방이 위기"라는 보도를 이어 갔다. 북이 미사일 발사를 한 것인지 인공위성 로켓을 쏘아 올린 것인지, 사실은 정확히 알리지 않고서 설날에도 국방전문가들을 연예인보다 더 많이 등장시켰다. 그런데 시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저 그런 또 하나의 턱도 없는 도발은 우리가 능히 감당해 내고도 남는다고 자신하는 듯하다.

미사일 뉴스 못지않게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 4월에 치러지는 20대 총선 관련 얘기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향뉴스도 총선을 준비하는 예비후보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저마다 지역발전의 적임자임을 내세웠다. 신작로를 내고, 철길을 닦고, 공장을 세우겠다는 종류의 현수막 문구가 여기저기 보였다.

그런데 현수막 어디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엇비슷한 공약조차 찾기 어려웠다. 많이 안타까웠다. 후보들 모두 자신의 유명세를 팔아 거의 비슷한 수준의 과대광고만 하고 있었다.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는 노동관계법은 ‘쟁점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선거구획정과 패키지로 처리될 신세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선거 앞에서 노동은 흥정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초라한 신세임을 여실히 확인했다.

노동에 무지한 후보도 있었다. 연휴기간 청년을 대표해 보겠다고 스스로 밝힌 어떤 예비후보 동영상이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청년일자리와 청년노동에 관해 분명한 생각을 밝히지 못했다. 노동관계법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물론 그의 말대로 예비후보가 모든 현안을 꼼꼼하게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청년임에도 청년과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청년·일자리·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핵심 말이 된 지 오래다. 구직과 알바를 이어 가는 청년들이 그와 비슷한 또래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는 대형 광고주인 정부가 “노동개혁은 청년일자리입니다”라고 줄기차게 광고해 오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예비후보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면서 여당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어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번 총선에서 노동은 주요 의제에서 제외될 것인가. 총선 후 어떤 정치세력이 승리를 하든지 노동과 노동자들이 맞게 될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도 말이다. 사실 노동자들은 대변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세력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게다.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정치세력도 예전만 못하다.

비교해 보면 2012년 19대 총선과 연이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동자들을 대표하겠다는 후보군이 크게 존재했다. 다양한 통로 중에는 정당 참여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각각 제1야당과 제2야당에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4년 전 이맘 때 노동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주요 정치세력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함께했다. 해당 정치 집단에서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해 내고 있었다. 자연스레 노동은 그야말로 각 정당의 핵심 중의 핵심 공약이었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여당에서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의 상당 부분은 일자리와 노동에 관한 것들로 채워질 정도였다.

비극적인 노동현실의 원인을 노동자들 본인이 다수당이 되지 못한 데에서 찾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매우 작은 부분이다. 더 큰 원인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궈 낸 공약을 지켜 내지 못한 데 있다. 그동안 여야 간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노동자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노동자들은 '철저한 감독과 감시'를 하지 않았다. 총선 승리와 대통령 당선을 이끈 여당 공약을 보자. 실현불가능한 일자리 공약이 대부분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근로권을 보호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더 이상 쉬운 해고는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법도 아닌 지침으로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고 있다. 후회막급이다.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감시하고 감독했어야 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선거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 수많은 선거가 있었다. 하지만 '철저한 감독과 감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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