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철 흥국생명해복투 의장

408일. 고공농성을 벌였던 차광호씨가 땅으로 내려오는 데 걸린 기간이다. 아직도 서울에서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0일을 훌쩍 넘겨 하늘에서 농성 중이다. 통계상 분규 사업장과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든다는데 장기투쟁 사업장은 그대로다. <매일노동뉴스>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흥국생명은 태광그룹 계열사다. 매년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2005년 1월 미래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자본의 탐욕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해 8월 노조전임자 전원을 해고했다. 태광그룹은 노조 파괴를 위해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남발했다. 태광산업·대한화섬·흥국생명 정리해고 사건은 대표적인 노조말살 사건으로 2005년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흥국생명은 정리해고 요건 중 미래위기에 대비한 경영상 해고가 필요하다는 요건을 작위적으로 만들려고 사실관계를 조작해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다.

흥국생명 정리해고의 목적은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아니다. 그룹 오너인 이호진 회장은 정규직 인원을 감축한 후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방법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접 정리해고를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노조를 말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재벌 오너가 개입해 정리해고를 진두지휘한 사실과 회사 자금을 횡령해 회계조작을 하거나 해고회피노력으로 아웃소싱한 회사가 사실은 자녀에게 편법상속을 위해 일감을 몰아준 회사라는 사실이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비자금 및 횡령사건 재판에서 밝혀졌다. 재벌그룹의 모자가 한꺼번에 구속되는 등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흥국생명 해고자들은 2005년 복직투쟁위원회(정리해고 16명, 징계해고 4명)를 구성한 후 11년에 걸쳐 흥국생명 대주주 일가의 탐욕과 노조말살(정리해고·징계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해머링 맨’이 위치한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터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매주 해고자 복직집회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해고자가 되면 열심히 투쟁한 끝에 훈장을 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투쟁이 장기화할수록 사람들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해고자들의 투쟁이 길어지면 투쟁기금 문제, 생계 문제, 투쟁의 지속성 문제가 노출된다.

사무금융연맹은 7대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해고자복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교직원공제회콜센터 여성노동자 해고투쟁과 사무연대노조 남부천신협 해고자 복직투쟁을 전개했다. 해고자들은 함께 연대한 조직들의 지원에 힘입어 일터로 돌아갔다. 현재 7년이 넘어가는 연맹 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 비정규직 투쟁과 12년째로 접어드는 사무금융노조 흥국생명 해고자 복직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농협중앙회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투쟁과 흥국생명 해고자 복직투쟁 집회를 연달아 개최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흥국생명해복투 해고자들이 산별노조에서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집행부 입맛에 따라 투쟁 지원이 들쑥날쑥하는 듯하다.

상급단체 집행부의 무능과 관료화 심화, 투쟁하는 조직에 대한 전략적 관점의 부재, 정규직노조의 한계로 인해 장기투쟁 사업장 해고자들과 연결된 투쟁의 고리가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해고자들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 길은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있도록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과 연대, 장기투쟁 사업장 해고노동자들의 힐링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도 필요하리라 본다. 장기간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지치지 않고 투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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