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필수유지업무가 새로 규정됐다. 필수공익사업 업무 중 정지되거나 폐지되면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뜻한다. 워낙 중요한 업무라 필수유지업무 종사자는 파업권도 제한된다. 최근 필수공익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의 취약한 보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공항은 놀랍게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의해 움직였다. 필수유지업무라 할 보안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디 공항뿐이랴. 기간산업 곳곳에서 외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안전의 무분별한 외주화, 과연 괜찮은 걸까.

국민의 생명·안전 외주화, 법으로 규제해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4년 세월호 사태와 지난해 메르스 사태는 현 정부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최근 들어 인천국제공항 보안이 뚫리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세 가지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안전관리 업무의 외주화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소방·보안검색·순찰같이 안전과 직결된 업무를 모두 외주화하고 있다.

더군다나 노조에 따르면 2001년 개항 이후 현재까지 승객은 3배, 비행편수는 3.5배 증가됐는데도 안전관리 인력은 제자리다. 결국 운영기관이 수익을 올리는 데 눈이 멀어 안전 업무를 외부에 맡기고, 인력 역시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안전 업무의 외주화는 각종 사고 증가의 가능성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적 영역을 민간에 무차별적으로 떠넘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수서발 KTX의 민영화 과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투입하면서 그들에게 높은 소속감이나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투철한 직업의식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세월호 사태 이후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철도·도시철도·항공운수사업 중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연관된 업무와 선박직원법·소방기본법·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선박직원의 직무·소방·유해·위험 업무를 ‘생명안전업무’로 규정하고 이 업무에는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직접고용 정규직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법안이 통과돼 생명안전업무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신의 일에 전념해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영평가 기준에 안전업무 외주화 불가 명시 필요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정부는 기간산업 분야에서도 현장업무 전반을 외주화시키는 정책을 줄곧 펴 왔다. 외주화 풍조 속에서 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별도의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기관 경영진의 머릿속에 외주화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득 차게 만들면서, 외주화 업무가 안전과 관련 있는 것인지 여부는 가리지 않도록 만들어 온 셈이다.

최근 발생한 인천국제공항 밀입국 사태와 서울지하철 사고로 인해 외주화가 안전사고의 잠재적 요인이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기간산업·공공부분에 대한 외주화 흐름을 끊으려면 경영효율화를 중시하는 경제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공공부문 관리정책 전반에 대한 철학도 바꿔야 한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경영효율화를 경영평가 제1의 목표로 지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경영평가 핵심지표를 그대로 놔두고서는 안전업무 외주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안전업무에 대해서는 외주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영평가 기준에 명시해야 한다.

경영효율화를 앞세우고 있는 현 정부의 개과천선도 필요하지만 효율화 정책에 동조하고 있는 야당의 대오각성도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가 공공부문 외주화가 불러오는 잠재적 안전위협을 인지하고 종합대책 수립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테러방지법? 비정규직방지법 있어야 안전 지킬 수 있어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

IMF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업무를 핵심과 비핵심으로 나눠 핵심업무에는 직접고용, 비핵심업무에는 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경향이 전 산업에 뿌리 깊게 고착돼 있다. 모든 업무를 핵심과 비핵심으로 나누면 당연히 핵심업무는 줄어들고, 비핵심업무는 늘어나게 돼 있다. 그래야 비용절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공공부문의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정규직화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라고 본다. 안전업무의 외주화 문제를 끊을 수 있는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안전업무를 정규직화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안전업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폭발물 의심물체가 발견됐다. 화장실을 가장 많이 들락거리며 청소하는 노동자가 안전업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 상시·지속적 업무를 가지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안전이 지켜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정부가 테러방지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안전을 지킬 만한 모든 내용은 이미 항공보안법에 다 들어 있다.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니다. 법이 필요하다면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비정규직방지법이 있어야 한다.

안전업무 외주화 묵인하는 국토부 인식 전환부터

이종선
철도노조 차량국장

철도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대중교통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외주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끊임없이 운행되는 열차의 안전을 외주화하는 것은 큰 문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는 안전 업무의 외주화를 확대하고 있다. 경영 효율을 높이고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서 외주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전업무를 맡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130만~15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임금이 낮은데 일이 힘들다 보니 장기근속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철도공사가 내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러다 숙련도가 축적되지 않아 상당수 안전업무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비의 품질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 코레일은 외주화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겼을까. 큰 이윤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인건비에 외주업체 관리비를 코레일이 부담해야 한다. 결국 인건비를 크게 낮추지도 못하면서 안전업무를 외주화시킨 것이다. 정비 불량은 공장에서 불량품이 생겼을 때 물건을 다시 찍어 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열차가 탈선할 수도 있고 전복돼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다.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의 정비 업무를 외주화한 국토교통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보다 귀중한 건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이미 배운 교훈이다. 노조는 안전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싸워서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막을 것이다.

환자 안전과 무관한 병원 업무는 없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병원사업장에서도 외주화 경향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외주화된 청소뿐 아니라 환자이송·시설관리 등 여러 부문에서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다. 아직까지 간호업무에서는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으나 절대 안심할 수 없다. 병원에서의 안전업무는 단순히 의사·간호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병원의 모든 업무는 모두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예컨대 시설관리를 잘못해 중환자실 전기만 나가도 환자들은 죽는다. 이건 메르스를 통해서도 확인된 사항이다. 환자를 이송하거나 간병했던 노동자들이 메르스에 걸렸지 않나. 이들이 병원 내외에서 감염 확산의 통로가 됐는데도 거꾸로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감염관리시스템에서 누락됐다. 결국 병원 내 비정규직·외주화 확대가 메르스 확산의 한 원인이 된 것이다. 창성요양병원 화재사건에서도 화재 당시 근무하던 정규직 직원이 없었다.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환자는 어떻게 대피시켜야 하는지 숙련된 노동자들이 없는 상태에서 참사가 일어난 거다.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업무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에 기반해 안전을 위해서도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자는 흐름을 극복해야 한다. 이에 더해 직접적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법·제도 마련, 사용자 책임 강화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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