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둔 도심 네거리엔 차도 사람도 많아 분주했다. 어딜 가나 꽉 막혀 체증은 풀릴 줄을 몰랐다. 마음 급한 누군가 무리한 끼어들기에 나섰다. 창문 내린 운전자가 홧김에 욕을 뱉었다. 빵빵 경적 소리에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거기 곳곳 때 이른 봄 노래가 울려 섞였다. 입춘인 줄 어찌 알고 날이 좀 풀렸고 햇볕이 구석구석에 미쳤다. 동화면세점 앞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의 오래된 비닐 집에도 온기가 돌았다. 의료연대 나선 한의사가 상담지를 적고 진맥을 하더니 머리와 무릎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다. 체증을 호소하는 농성자에게 화병 진단을 내렸다. 머리 곳곳을 지압하는데, 미처 머리를 감지 못했다고 환자가 수줍게 고백했다. 언제는 감았다고, 다 같이 웃고 말았다. 잠 못 이룬다는 농성자가 어느 새벽 문득 아파트 18층에서 뛰어내리면 어찌 될까를 고민하다 결국 밤을 새웠다고 말했고, 의사는 눈 맞추며 얘길 들었다. 충동 고백을 칭찬했다. 자신은 멀쩡하다던 농성자는 허리 디스크 의심 환자였다. 벌침 처방이 나왔다. 좀 아프단 얘기에 긴장감이 흘렀다. 침놓기 전에 말해 달라고 엄살을 떨었다. 요통에 좋다는 맥킨지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을 의사는 당부했다. 노숙농성 254일째, 마음 병은 몸 여기저기로 번졌다. 거기 누구나가 화병을 지병 삼았다. 꽉 막힌 체증이 풀릴 줄을 몰랐다. 골병 깊어 가는데 농성장 사람들이 자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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