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한 권의 책을 들고 국회 정론관을 찾았다. 초록색 표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책이다.

권성동 의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김종인 위원장이 자신의 책을 통해 독일의 하르츠 개혁에 지지 입장을 보인 만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파견 규제 완화에 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의원은 독일이 하르츠 개혁을 통한 파견 규제 완화로 신규 고용의 75%를 파견에서 창출했다고 덧붙였다. 파견을 대폭 허용해도 실제 늘어나는 파견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여당의 설명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권 의원은 김 위원장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비판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사협의를 할 때 노조측이 비정규직을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게 하면서 비정규직은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기 어렵다”, “노조가 권력화하면 노조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책 문구를 인용했다.

이렇게 단편적인 단어와 문구를 논거로 삼으니 “파견을 늘리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자”는 식의 모순적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나쁜 집단’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논리구조다.

김 위원장은 권 의원의 해석을 두고 “독일과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며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라고 일축했다. 독일은 노조의 경영참여가 보장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고용보호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각종 노동지표는 OECD 통계로도 독일과는 정반대다. 대표적인 것이 평균 근속연수다. 5.6년으로 OECD 꼴찌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두고 파견만 늘리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설적으로 여당의 주장은 김 위원장의 전력을 오히려 부각시킨다. 알려진 대로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 대통령의 선거전략을 짰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도 그가 설계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어떻게 됐나. “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재벌·대기업의 소원수리로 불리는 ‘쉬운 해고’로 귀결되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를 기어코 '공정인사'라고 이름 붙인 정부의 조어 수준은 또 얼마나 섬뜩한가.

멋대로 해석하고 상대의 의견을 마이동풍 식으로 무시하니 이런 조어가 나오는 거다. 적어도 노동정책을 세울 때는 기업 얘기만 들을 게 아니라 노동자 목소리도 함께 들어야 할 것 아닌가. 노사정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은 정부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은 그 법이 통과되면 대다수 국민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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