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은 혹은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 간 상호작용 빈도를 늘리거나 접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유대감과 친밀도를 높이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가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등 궁극에 사회발전을 도모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전쟁의 갈등상태에 처하게 된 사회집단들이 화해와 상호 이해증진을 위해 새롭게 태도를 바꾸고 그것을 위해 그들이 자주 만나는 장소를 제도화하고 그 장에서의 논의가 합의에 이르러 큰 틀에서 사회협약으로까지 발전하고, 그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궁극에 양자 간의 관계 전환을 이루고 사회적인 갈등비용을 줄이는 등의 성과를 거둔다면, 이는 분명 하나의 사회혁신적 현상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예컨대 1987년 대투쟁 이후 전노협과 민주노총 설립까지 민주화 전환기의 한국 사회가 갈등의 시대를 겪는 가운데 그것을 전환하기 위해 국가가 당시 법외노조였던 민주노총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갈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구태의연한 노동법을 개혁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같은 기구를 설치해서 운영했던 것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사회혁신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물론 그해 노개위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국회에서 의사결정과정까지 무시하면서 날치기로 노동법을 통과시키려 했던 여당의 시도와 그것이 부른 총파업의 갈등은 노개위의 사회혁신적 효과가 미흡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한 마리의 제비가 찾아왔다고 봄이 완전히 도래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 이후 20년의 과정은 어떨까.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긴다.

바야흐로 일자리 창출이 시대의 첨예한 화두로 부상해 있다. 급작스럽게 등장한 노동개혁이라는 개념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야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명확해지겠지만, 여하튼 현재 공론의 장에서 회자되는 노동개혁이 명목적으로 가장 강하게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해 간 것은 청년고용 진작, 즉 일자리 창출이었다. 오늘날 노동조합이 사회적 비난여론에 직면하게 된 것도 그들이 노동시장 내 일부의 장에서 구축한 안전성의 아성이 고용창출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식의 사고에서 기인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해석법이지만, 적어도 청년들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의 정치(politics of entering)야말로 너무나 중요한 정책적 화두임에도 노동조합이 그것에 충분히 응대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노조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에게 양질의 노동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심각하게 자신의 과업으로 삼아 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은 것만은 명확하다.

노동조합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 심지어 시민사회와 전문가, 그리고 기존 노동시장 기진입자 모두 이 부분에서 요청되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있다. 이때 우리가 답으로 찾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회혁신이다. 적지 않은 비판도 있었지만, 지난해 9월 사회협약이 체결됐을 때까지만 해도 무언가 사회혁신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을 거치면서 사실상 사회협약을 통한 사회혁신,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재조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 구조개혁 가능성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겠으나, 필자는 애초에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혁신은 한계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국가가 사회혁신을 만들기도 하지만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본다.

아마도 사회적 이해당사자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것이다. 국가는 설득이 아닌 윽박을 주된 방법론으로 택할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실효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회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과제가 남아 있다. 새로운 혁신의 길이 어떻게 형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사회협약 실패로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혹시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싹틔울 수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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