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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지침 ‘취업규칙’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그 전날에는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선포식이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모두 고용노동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철회하라’, ‘분쇄하자’는 것이었다. 노동부 지침이 발표된 이후 노동자들의 조직된 분노가 이렇게 집회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반해고 지침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면서 노동자들의 관심도 이에 집중됐다. 사실 이 나라 노동자에겐 저성과자를 통상해고 할 수 있다는 일반해고 지침만큼이나 노동부의 취업규칙 지침도 심각하다. 그동안 정년연장법 시행을 두고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사업장에서 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노동부가 중심이 돼서 추진해 왔다. 그 결과가 이번에 취업규칙 지침, 즉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으로 발표됐다. 그러니 이 취업규칙 지침을 살펴봐야겠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분노는 노동조합의 집회라는 조직된 것으로 표출되고, 아직 그것은 취업규칙보다 우선해서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노조 조합원들의 구호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취업규칙은 상시 1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서 작성·신고되는 것이니(근로기준법 제93조) 취업규칙 지침에 대한 분노는 이 나라 전체 노동자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발표한 지침을 그대로 전제해서 인용해 살펴보겠다. 미리 권력이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마련한 것이라고 단정 짓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2.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은 “그간의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원칙적으로 법정 정년연장과 이에 따른 임금피크제 등이 하나의 근로조건으로서 서로 대가 관계나 연계성이 반드시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기존 정년이 도달하는 해의 최종임금 수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임금 감액을 수반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정년연장에 관계없이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판단함이 타당”하다고 했다(59면). 법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으니(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시 사용자는 “법령에 명시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등 제반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지침은 “근로자 동의를 얻고자 성실히 노력했음에도 근로자측의 논의 거부 등으로 인해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취업규칙이 변경된 경우에는 판례가 인정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해 판단된다고 했다(60면).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에 관한 취업규칙 변경으로 인한 근로자측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 내용의 상당성, 대상 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 개선 상황, 노동조합 등과 교섭 경위와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사용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지침은 밝혔다(61~64면). 이번 지침에서는 임금피크제 말고도 근로자의 다른 근로조건에 관해서도 취업규칙 변경을 할 수 있도록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친절히 안내했다. 즉 지침은 “사업 또는 사업장 사정에 따라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조치”로 인해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경우에는 근로조건의 불이익한 변경으로 보기 어렵”고, 성과중심 임금체계 도입 등 “사업주가 임금지급 방식이나 임금체계 자체를 바꾸는 것은 노무관리나 생산성 향상 등 경영상 필요에 기초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65면). 이에 따르면 근로시간단축에 비례한 임금 저하와, 성과주의 임금제도 도입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아니니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 없이 사용자 맘대로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지침은 다만 임금체계 개편으로 “일부 근로자의 임금 감소가 초래되는 경우에는 불이익변경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때에도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바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고, “차별 없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임금 제도”라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돼서 유효하다고 했다(66면). 이상이 지침을 통해 정부가 사용자들에게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안내해 준 것이었다. 더 인용할 것도 없다.

3.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과반수노조, 과반수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94조제1항 단서).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114조제1호). 이처럼 사용자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법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불법이고, 범죄라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은 선언하고 있다. “임금 감액을 수반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정년연장에 관계없이 불이익한 변경”이므로 법이 규정한 대로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서만 사용자는 할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이것 말고 다른 해석은 없다. 불법이라서 무효로 쓸 데 없는 짓을 했다고 법원으로부터 판결받는 것 말고도 형사처벌까지 받아서 사용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라니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해서 적용해 주고 싶어도 이런 법을 두고서는 판사는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다른 해석을 판결로서 선고한다면 그건 판결을 한 판사가 법을 무시한 것이고 더는 자신이 법적 양심에 의해서 판결하는 법관이 아니라고 선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판결들이 축적돼 그것이 법원의 판례라면 그건 법원이 노동법을 사용자를 위한 법이라고 알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법이 사용자를 위해 부당하다고 사용자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하고 그것이 판례라면 그건 법이 아니라 그 판사가, 법원이 부당한 것이다. 분명히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경우에도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1978.9.12 선고 78다1046 판결 등). 적어도 1989년 3월29일까지는 이런 판결을 한 판사와 법원은 자신이 부당하지 않다고 변명할 수는 있었다. 근로기준법이 1989년 3월29일 개정되면서부터 불이익변경시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부터의 변명은 사용자를 위한 법이라고 노동법을 오독했다는 무지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어떤 행위가 법이 정한 절차를 위반했다 해도 그것이 불법이 아닐 수도 있고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어떤 행위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랐다고 해도 불법이 될 수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정당방위·정당행위·긴급피난행위·권리남용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당행위 등에서 사회통념 내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논의될 수는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다.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독립적인 면책 사유로 들고서 법 위반을 불법이 아니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통념 합리성에 관해 법원이 판결해 왔다며 권력은 사용자를 위해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지침을 마련해서 안내하고 있다.

4. 취업규칙이라니. 노동자가 한 사업장의 근로자가 되는 계약, 근로계약은 사용자와 그 내용, 즉 근로조건 등에 관해 합의해서 체결한다. 이것이 이 자본의 세상, 계약 자유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태어나면서 선언한 질서다. 이 원리를 폐지하면 이 세상은 더는 자본의 세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의 근본질서다. 국가권력과 그에 복종하는 인민인 국민과의 권력관계 질서가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질서의 기본 질서이다. 민법은 고용계약을 규정하고, 특별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통해 근로계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 등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합의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정부 지침이나 법원 판결이 있다면 그런 지침과 판결은 부정당해야 한다. 나아가 그걸 부정하는 법이 있다면 그 법은 위헌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부정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작성·변경 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사업장 내 복무규율뿐만 아니라 근로시간·임금 등 근로조건 기준에 관한 준칙을 사용자가 작성·변경하도록 하고 있으니, 이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가 근로자로서 자신의 근로조건을 사용자가 정하도록 한 이 나라의 노동현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은 노동자를 자신의 근로조건에 관해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노예로 만들고 있다. 그나마 불이익변경에 있어서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로 법은 규제했던 것인데 그마저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그걸 법리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도 못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노동법이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면 근로기준법이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친 취업규칙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불법·무효라고 선언하는 법리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노동자를 노예로 취급하는 전근대의 질서를 법이라고 판결로 지침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취업규칙은 노예의 지침이다. 근로자와 합의 없이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을 정하는 취업규칙을 사용자가 작성·변경한다면 불법·무효여야 한다. 불이익한 변경이든 아니든 합의 없이는 근로계약에 적용될 수 없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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