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기일 공인노무사(현장노무사사무소)

연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사무실에서도 손에 입김을 불어 넣으면서 일하고 있다. 몸도 추운데, 마음도 얼어붙게 만든 일이 있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발표 기자회견이었다.

일반해고 지침을 요약하면 “평가기준에 따라 저성과 근로자를 평가한 후 교육훈련을 통한 개선기회를 주고, 해고회피노력을 해도 개선여지가 없으면 해고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면서 “지침이 시행되면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기업경쟁력 강화, 정규직 직접고용 확대 및 비정규직 감소뿐 아니라 청년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1석4조의 기대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저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쉬운 해고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해고노동자 한 분이 사무실에 찾아오셨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2월 중순께였다. 지인 소개로 상담했는데,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적잖이 놀랐다. 한 직장에서 두 번 해고되는 경우도 드문데, 이번까지 무려 세 번이나 해고됐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위원장을 하면서 선두에서 투쟁하던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세 번이나 해고됐다고 했다.

특히 두 번째 해고는 사측이 징계위원회도 개최하지 않은 채 휴대전화 문자로 즉시해고를 통보했다. 처음 상담할 때만 해도 “상대방은 분명 언론사인데, 설마 언론사가 그랬으려고”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사측이 법을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측은 노조위원장인 그를 해고해야만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회사는 그를 해고하고 대법원에 상고하기까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두 번째 해고 사건은 회사가 상고를 취하하면서 복직돼 종결됐지만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노동조합은 사실상 와해됐다.

그런데 복직한 지 3년도 안 돼 또다시 세 번째 해고를 당했다. 3차 해고 역시 그 사유와 절차 면에서 명백히 부당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싸운 끝에 복직이 됐다. 그런데 복직한 지 석 달도 안 돼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그는 또 싸웠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직을 인정받아 원직에 복직했다.

그러는 사이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은 대부분 그만뒀고, 노동조합은 이름만 남았다. 그는 힘들어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자문자답하게 됐고, 혼자서 회사와 계속 싸울 걸 생각하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심한 우울증과 적응장애를 겪었다. 도저히 출근할 힘조차 없었다. 회사는 그의 병가신청도 거절했다. 회사는 매일 그의 출퇴근 현황을 기록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그는 무단결근 및 불성실 근무로 또다시 해고됐다. 그는 굴복하지 않고 다시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그를 복직시켰으나 복직하던 날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이틀 뒤에 징계해고했다. 이로써 그는 한 회사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는 또 싸웠다. 지노위·중앙노동위에 이어 행정법원에서도 승소했다. 이번에도 사측이 절차 등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다섯 번째 싸움도 그가 이길 것이다. 그리고 복직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어떠한 사유를 만들어서라도 그를 해고하려 할 것이다. 회사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그를 해고할까. 그리고 그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는 오늘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 마치 싸우러 태어난 사람처럼. 나는 그의 깨어진 꿈과 일상화된 고통을 4년째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저성과자 해고제가 도입되면 그는 어떻게 될까. 많은 노동자들이 지침에 따라 해고될 텐데, 그들의 피를 먹은 경제는 살아날까. 혹시 또 다른 ‘그’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것은 아닐까. 노동부 장관의 일반해고 기자회견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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