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가 심상치 않다. 지난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탓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공무원 선발기준으로 활용될 공직가치가 마련됐다. ‘애국심·청렴성·책임성’이 핵심이다. 당초 개정안 입법예고에서는 민주성·도덕성·투명성·공정성·공익성·다양성 등도 공직가치에 포함됐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 지시로 3개 가치만 남았다. '공무원은 애국심 등 공직가치를 준수하고 실현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무조항’도 포함됐다.

직무중심의 인사관리와 성과관리체계도 강화됐다. 직무를 정하고, 그 업무에 적합한 성과·역량·경력을 갖춘 공무원이 임용되는 방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성과관리체계다. 높은 성과를 내는 공무원의 경우 승진과 상여금 지급으로 우대하는 반면 저성과자는 역량·성과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성과가 향상되지 않는 공무원은 성과심의위원회를 거쳐 직위해제 절차를 밟게 된다. 정부는 공직사회에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마련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파장이 만만치 않다. 우선, 세가지로 선별된 공직가치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직가치인 애국심은 ‘사상검증’의 잣대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세무직 공무원시험에서 ‘애국가 4절 부르기’, ‘국기에 대한 맹세 암기’ 등을 요구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공무원 채용과정은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하고 공정해야 함에도 정부 스스로 사상검증의 벽을 세운 셈이다.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이 아니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정권 공무원’을 뽑겠다는 의도다. 벌써부터 “상명하복에 익숙한 검사 출신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려 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과연봉제와 퇴출제 도입은 공직사회에도 ‘쉬운 해고’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는 민간기업에 적용될 ‘일반해고(공정인사)와 취업규칙 요건 완화 행정지침’을 발표했는데 인사혁신처도 이와 보조를 맞춘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 현재 기관장이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무원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저성과자 퇴출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우리나라 직업공무원제도는 그 밑둥이 뿌리채 뽑히게 된다. 직업공무원제는 공무원이 보람 있는 직업이라 여기고,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 제도다.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 채용에 있어 문호는 개방돼야 한다. 적정한 보수와 연금제도로 재직·퇴직 후의 공무원의 생계는 보장돼야 한다. 승진 기회가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직업공무원제도는 주로 유럽과 동양에서 발달한 제도다. 반면 미국의 경우 직업공무원제가 발달하지 못했다. ‘실적주의’가 근간을 이뤘다. 개방형 공무원제를 기반으로 하되 상위직은 정치적으로 임명됐다. 내부 승진을 통해 상위직에 오를 수 있는 직업공무원제와는 상반된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식 제도를 공직사회에 이식시키려 하는 셈이다. 그런 내용이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 담겼다. 여기에 박정희 정권 시절에나 있을법한 애국심 등 공직가치를 착종시키려 한다. 정부가 그토록 쫓아가려는 미국조차 민주성·투명성·공익성 등이 공직가치의 핵심이다.

20대 국회의원 총선은 불과 70여일도 남지 않았다. 국회는 쟁점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논란을 부르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국무회의는 마치 봉숭아학당과 유사했다. 입법 예고된 개정안 내용이 변경됐음에도 문제제기조차 없었다. 그리곤 국회에 새 짐을 떠넘긴 것이다. 결국 정부로선 ‘할 일은 다했다’는 식이다. 그렇게라도 정부는 체면치레를 하겠다는 것인가. 총선을 앞두고 공직사회를 다잡으려는 의도인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려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해 야당은 “개발독재 시대의 공직 선발기준으로 공무원 조직을 획일화하려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공무원노동계는 “공무원 조직을 기업화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들조차 수긍하지 못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인 만큼 국회는 신중하게 법안 심의를 해야 한다. 직업공무원은 정권에 채용된 '하수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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