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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목소리
▲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지금 ‘청년문제’가 처한 역설은 여의도 정치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하자, 정작 청년 본인들은 목소리를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의 절박한 이야기는 점점 전문가의 탁월한 식견에 의해 대체된다. ‘요구’는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매끈한 ‘정책’이 되지만, 애초에 그렸던 삶을 전부 담아 내지는 못한다. 정책 수요자는 곤궁한 삶을 증언하는 참고인 자리에 앉아 고통을 호소하는 배역을 부여받는다. 운동에서 정치로의 전환은 순식간에 이뤄지며, 그것으로 ‘당사자’의 몫은 끝나 버린다. 모이지 못한 ‘목소리’들은 각자의 생활로 다시 흩어진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청년운동의 기본 과제는 좋은 정치를 바라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모이고 드러나는 공간을 여는 일이다. ‘표’로 조직된 다수의 목소리를 힘으로 삼아, 여러 정당과 후보들에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당당히 요구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더 좋다. 단지 나이가 ‘젊은 후보’ 말고 청년을 대변할 수 있는 ‘진짜 청년후보’를 선정해 보면 어떨까. 아니면 청년들이 원하는 사회의 방향을 어떤 가치들에 집약해 세상에 선언할 수도 있다.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이라거나.

언제나 문제는 그 정치적 실천에 함께할 청년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갈 청년 당사자인 ‘우리’는 어디 있는가. 모두 숨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필자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넘치는데도 말이다.

이제 정치권이 아무리 청년을 호명해도 청년들은 잘 반응하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청년비례 후보를 뽑는 이벤트가 호들갑스럽게 열린다 해도, 많은 청년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은 이러한 ‘행태’를 이미 충분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청년을 마케팅에 소비할 뿐 우리를 위한 문제해결에 무능력한 제도정치의 모습이 ‘반정치주의’ 혹은 ‘정치냉소’를 키워 온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은 청년들이 그런 상태에 머물기를 원하기도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지금 청년들에게 투표에 나설 진짜 ‘근거’가 있는가. 청년들의 표심에 호소하던 어떤 정당들은 투표가 끝나고 나면 ‘20대 연령층 투표율’을 들먹이며 또 다른 ‘20대 개새끼론’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표’지,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사회시스템에 대한 혐오와 절망으로 가득 찬 청년들의 마음은, 변화를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자기 세대의 힘과 목소리를 모으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들은 ‘자기 조직화에 의한 느린 변화’에 참여하기 어렵다. 우리는 차라리 사회가 붕괴했으면 좋겠다거나,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거나, ‘탈조선’만이 정답이라는 자조 속에 눈앞에 닥쳐온 생존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인터넷에 접속해 ‘헬조선’과 ‘흙수저’라는 말로 절규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종말론적 정서라는 ‘손쉬운 절망’으로 치닫는 것을 멈추고, 변화라는 이름의 ‘어려운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투표해야 할 이유, 정치에 참여해야 할 동기 자체가 없다. 저항하는 ‘목소리(voice)’를 빼앗기고, 오로지 체제에 대한 ‘충성(loyalty)’ 아니면 ‘탈퇴(exit)’만을 강요당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2016년 총선은 또 다시 어떤 계기로 남을 것인가.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정준영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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