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제종규(52·사진) 알리안츠생명노조 위원장의 얘기다. 최근 알리안츠생명이 노조가 강하게 반대한 별도 GA(보험대리점) 법인 설립을 보류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숨을 돌릴 법도 한데, 제 위원장은 "싸움은 이제부터"라며 팔을 걷어붙였다.

노조 반발로 별도 GA법인 설립 '보류'

생명보험업계가 장기 저금리 기조에 따라 고이율상품 역마진 폭탄을 맞으면서 알리안츠생명도 최근 몇 년간 실적부진에 시달렸다. 저금리로 영업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확충 부담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에 따라 보험사들은 지금까지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부채(보험금을 고객에게 돌려주기 위해 보험사가 쌓아 놓은 책임준비금)를 시가로 반영해야 하는데, 알리안츠의 경우 추가로 쌓아야 하는 준비금이 1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그룹 본사가 매각 후 한국 철수를 유력하게 검토한 반면 그룹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AZAP)와 한국법인에서는 별도 GA법인 설립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 GA법인 설립 구상은 곧바로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노조는 "별도 GA법인 설립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며 "대면영업채널을 폐업해 설계사와 영업 관련 부서 직원을 내보낸 뒤 GA법인에 퇴직자 중 일부를 사업가형으로 채용하는 식으로 비용을 줄여 보겠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노동계와 정당·시민단체와 함께 '알리안츠생명 구조조정 대책위원회'를 꾸려 금융당국은 물론 그룹 본사까지 설득하면서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했다. 예상보다 격한 반발에 부딪힌 회사는 결국 GA법인 설립 구상을 내놓은 지 석 달 만인 이달 22일 사내 인트라넷에 "GA설립은 보류됐다"는 글을 띄웠다.

이에 대해 제 위원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잘못된 발상이자 무모한 계획을 추진하면서 조직에 유무형의 손실을 입혔다"고 비판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직원들은 정리해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설계사들은 일터를 위협받는 바람에 영업에 전념하지 못했다. 일부 설계사들은 이탈했다. 애초부터 문제가 많은 계획을 기획해 회사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당사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5선 위원장 당선, 고용보장에 주력

무게추는 자연스럽게 매각 쪽으로 옮겨 간 분위기다. 제 위원장은 "그룹 차원에서 매각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사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어찌 됐든 그룹은 매각과 런오프(설계사 영업 폐지), 별도 GA법인 설립(트랜스포메이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며 "세 가지 방안 모두 구조조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노조의 고용안정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준비된 싸움을 위해 노조는 26대 임원선거를 6개월 앞당겨 진행했다. 현 집행부가 출마해 지난 25일 당선됐다. 유권자 777명 중 660명이 투표(투표율 84.9%)해 93.5%(617명)가 찬성했다. 5선 위원장이 된 제 위원장은 "알리안츠가 한국 땅에서 사업을 지속하든 매각하든 선량한 직원들과 조합원들의 고용은 어떤 경우라도 보장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매각이 이뤄질 경우 다음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인수자가 나타나길 바란다고 했다.

"투기자본이 아닌 순수자본이 와야 하고, 조합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해야 한다. 또 영업을 중시하고 영업쪽에 투자를 확대할 의지가 있고, 한국 땅에서 지속적인 사업영위를 바라는 자본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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