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2일 공정인사 지침(쉬운 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근로조건 일방적 저하 지침)이라는 이름을 붙인 2대 지침을 발표했다.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대하고, 경영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지침 발표를 강행한 것이다. 정부 지침이라지만 경제단체가 그 회원사를 위해 작성한 안내서 정도로 보일 뿐이다.

‘쉬운 해고 지침’은 지침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만 지난달 30일 개최한 전문가간담회에서도 ‘가이드북’으로 지칭한 것처럼 안내서 정도에 불과하다. 저성과자 통상해고 트랙을 상세하게 설명해 도입함으로써 쉬운 해고의 길을 열었다. ‘근로조건 일방적 저하 지침’은 기존 지침을 변경하는 형태로 소위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확대 적용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 정년 60세 적용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하더라도 유효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근로조건 일방적 저하의 길을 열었다.

노동부는 왜 무리수를 감행한 것인가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전경련·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무역협회·벤처협회·중견기업연합회·소상공인연합회 등 8개 경제단체로부터 153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제출받아 2014년 12월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경제단체 부단체장과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석하는 규제개혁 민관합동 회의에서 정부 검토 결과를 공유하고 추진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 23건은 추가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는데, 그중 노동부 소관사항인 ① 업무성과 부진자에 대한 해고요건 확대 ②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③ 임금피크제 법제화 ④ 경영상해고 요건 완화 ⑤ 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⑥ 파견 업종 및 기간 규제 완화 ⑦ 근로시간단축 규제 유연화 ⑧ 통상임금 부담 완화 등에 대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현 정부는 대통령을 비롯해 관료들과 여당 인사들이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노동 관련 규제개혁으로 제시된 사항들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노동운동의 투쟁을 통해 마련된 최소한의 보장 장치마저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노사정위에서의 노사정 합의 등은 한국노총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경영계의 위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적 절차를 진행한 것에 불과하다. 현재 진행 중인 노동부 장관의 2대 지침 강행과 정부·여당의 5대 노동입법은 위 규제개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부는 재벌을 위시한 경영계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기구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현재로서는 정권의 성격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위 의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선 노동부 공무원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근로조건 법정주의의 의의

헌법 제32조3항은 근로권의 한 내용으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근로조건 법정주의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를 이어받아 근로기준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은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의 확보가 사용자에 비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개별 근로자의 인간존엄성 실현에 중요한 사항일 뿐만 아니라 근로자와 그 사용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사항이어서 사회적 평화를 위해서도 민주적으로 정당성이 있는 입법자가 이를 법률로 정할 필요성이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판단기준도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 성격을 띠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도 시대상황에 부합하게 탄력적으로 구체화하도록 법률에 유보한 것”이라고 밝혔다(헌법재판소 2003. 7. 24 선고 2002헌바51 결정 등).

근로권의 중요한 내용이자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부당해고로부터 보호 및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서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은 법률로 정해야 한다. 이를 노동부 장관이 지침이나 가이드북 형태로 개악하는 것은 헌법 제32조3항에 위반되는 위헌적인 처사다.

2대 지침의 문제점

'쉬운 해고 지침'은 ‘저성과자 통상해고’ 트랙을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정당한 이유 있는 해고 및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이외의 해고를 금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무력화한다. ‘통상해고’란 용어는 법률상 용어가 아니다. 강학상 또는 판례상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판례가 인정하는 통상해고는 실형 선고, 파산 선고, 심각한 신체적·정신적인 장해 등으로 노무제공 자체가 불가능한 일신상의 사유에 한정된다. 저성과자라는 이유만으로 해고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런데 ‘쉬운 해고 지침’은 저성과자 통상해고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용자로서는 굳이 징계해고나 경영상 해고를 할 필요 없이 저성과자 통상해고 트랙을 활용하면 된다. ‘불성실’과 ‘태만’은 근로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성과’와 ‘경영위기’는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 책임마저 근로자에게 전가시킨다면 그것은 노동자를 노예의 지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특히 저성과 여부가 상대평가에 의해 결정될 경우 노동현장 공동체는 상호 간 무한경쟁으로 파괴되고, 그 결과 생산성도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근로조건 일방 저하 지침’에서 적극 도입하고 있는 소위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은 일본에서 판례를 통해 확립되고 노동계약법으로 입법된 것이다. 일본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94조1항 단서 같은 조항이 없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일본과 달리 취업규칙의 일방적 불이익변경에 절차적 정당화 사유를 채택해 집단적 동의를 얻어야만 정당화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강행규정이다. 이러한 규범체계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실체적 정당화 사유)을 차용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채택했다가 불이익변경이라도 집단적 동의를 얻지 않아도 유효한 요건으로 확대하면서도 그 인정은 매우 엄격해야 한다는 제한적인 태도를 취했다. 대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을 채택한 것 자체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마당에 이를 일반화해서 확대 적용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94조와 제4조를 침해하는 것이다.

2대 지침은 무효, 즉시 폐기해야

2대 지침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행정부의 지침 자체가 대외적 법률적 구속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2대 지침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내용으로 무효다.

‘쉬운 해고 지침’에 따라 저성과자 통상해고 트랙을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효이고, 또 정당하게 도입한 후 그에 따라 통상해고를 했다고 해서 그 해고가 법원에서 유효한 것으로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근로조건 일방 저하 지침’에 따라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또는 임금체계 개편을 도입한 경우 법원에서 유효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2대 지침은 노사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해서 갈등과 법적 분쟁을 양산할 것이다. 청년일자리 창출과는 무관하고, 모든 노동자를 쉬운 해고와 낮음 임금으로 묶어 두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2대 지침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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