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일자리가 해결된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신문기사를 쓰면 사례하는 지면 장사도 했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 관련법을 '장그래법'이라고 부르고 흥행한 드라마 주인공을 모델로 썼다. 노사정 협상 과정에 일방의 주장을 혈세를 들여 광고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그 모델은 사과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재계가 주도하는 '경제활성화법안 처리 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강제서명에 중재자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인다. 정부의 현안관련 국책홍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최고 권력자의 여론 선동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기인

▲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근 경제단체가 주관해 진행하는 1천만 서명운동에 박근혜 대통령이 서명한 것을 보고 국민들 앞에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서명운동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여론에 호소해 권력집단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가수반이자 행정부의 수장인 데다 입법부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새누리당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다. 이런 사람이 자신이 가진 여러 정책수단들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가서 한 행동은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서명을 하는 모습이 보도되자 황교안 국무총리는 자신이 온라인 서명을 하는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서명에 동참했다는 것을 언론에 알렸다. 당연히 남은 국무위원들도 서명 대열에 동참할 것이고 각 부처 공무원들이 줄줄이 동원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관료와 국민들을 강제동원해 관제 캠페인을 하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박근혜 대통령의 발상은 국민을 동원의 대상, 선전과 선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전체주의적 사고다. 대통령이 야당을 비롯해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토론할 생각은 않고 국민들을 동원해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으로 의사를 관철하려 할 경우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이 청년일자리와 고령자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보장한다는 거짓말을 중단하고 전경련·경총의 민원해결이라는 것을 인정하라. 기업을 먼저 살려서 그것으로 낙수효과를 볼 수 있다는 옛 노래를 하는 편이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대통령 서명운동 고육지책으로 이해해야

▲ 김동욱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지난해 노사정이 힘들게 합의한 노동개혁 대타협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회가 4개월째 거의 논의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노총의 9·15 노사정 합의 파기 선언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노동개혁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이에 경제계가 중심이 돼 시작된 대국민 서명운동이 박근혜 대통령의 참여와 시민단체의 동참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계가 앞장선 이유는 가뜩이나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노동개혁 법안마저도 통과되지 못한다면 기업은 물론, 근로자와 취업자를 비롯한 우리 국민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로 200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올해부터는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정년이 60세로 늘어나 고용절벽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비관론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경총이 실시한 2016년 경제전망 조사에서 기업의 과반수인 52.3%가 긴축경영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통령이 서명에 나선 것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고육지책이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정치권은 명분뿐인 정치적 다툼을 멈추고 일자리 창출과 우리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노동개혁법안 등 경제활성화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여론조작 국정홍보 피해자는 국민

▲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정부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국정홍보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 공익을 목적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을 고시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려 저임금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정책홍보는 사실을 왜곡하고 노동자·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재계의 주장에 따라 법에도 없는 해고지침을 만들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노동시장 구조개악 정책을 마치 경제를 살리고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것처럼 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홍보가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정부가 노사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쟁점에 대해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 이를 홍보하는 작태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더군다나 재벌 대기업과 함께 쟁점법안 통과를 위해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이 단체로 서명을 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홍보하며 야당을 압박하고 입법을 촉구하는 행위는 본분을 망각한 편 가르기요 관제 데모다.

친정부 학자를 앞세워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는 정부 정책홍보도 사실을 왜곡하는 짓이므로 근절돼야 한다. 만약 정부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을 홍보하면서 노동자가 내는 고용보험기금을 사용한다면 국회가 이를 감시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시끄러운 국정홍보, 정책실패의 역설

▲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과거 국정홍보처가 축소와 개편을 거듭하다 폐기된 핵심 이유는 국정홍보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처럼 정부의 홍보는 치우침이 없어야 하며 사실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으로 선전해 온 박근혜 정부의 국정홍보는 근거 없는 도그마와 진실을 은폐하는 프레임으로 가득했다. 정부가 혈세를 부어 홍보물을 만들고 마사지 언론플레이를 해 가며 정책홍보에 매달리는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정책실패를 의미한다. 진정 청년과 노동자에게 이로운 노동개혁이라면 애써 정부가 홍보하고 관변조직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노동자가 먼저 알아보고 일상 주변에 절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조가입 권유와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발언을 보라. 단숨에 태평양을 넘어오지 않았는가. 반면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에 대한 홍보만으론 부족했는지 대통령과 자본가 단체들이 힘을 합쳐 서명운동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 서명대를 깔고 사장들이 앞장섰다. 지위를 이용한 묵시적 강제로 직원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국정홍보가 아니라 여론조작에 가깝다. 홍보란 말하기에 앞서 듣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정부의 홍보라면 여론을 수집·분석해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민주국가를 확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 토대 위에 세운 정책이고 국정홍보라면 여론과 호응할 것이고, 듣지 않는 일방적 홍보라면 소음일 뿐이다. 박근혜 정권, 정말 시끄럽다.


장외투쟁으로 국회압박, 정상적 국정운영방식 아니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정부와 재계가 나서서 입법을 촉구하고 있는 경제활성화법과 노동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여야 간 입장 차이 때문에 처리가 안 되고 있는 법안들이다. 그런데 이걸 대통령과 행정부까지 나서서 장외투쟁 방식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건 정상적인 국정운영방식도 아니고, 삼권분립 정신에도 맞지 않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무조건 야당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모습이 과연 맞는 것인가. 법안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고 나름대로 그 입장차의 근거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이고 공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서명운동에 나서자 국무위원들도 줄줄이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발상 아닌가 싶다. 사실상 순수 민간차원의 서명운동이라고 보기가 어렵고, 관의 영향과 입김 속에 경제단체들이 조직적으로 나서 서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국회에서 기본적으로 협상하고 조정할 사안을 정부가 나서서 장외투쟁하다시피 몰아가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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