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대국민 담화 발표를 겸한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안보위기 상황이니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라,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노동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라고 국회에 요구하는 내용이 주였다. 특히 노동 5법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처리를 당부했다. 대국민 담화가 아니라 ‘대국회 담화’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새해 첫 대국민 담화를 노동관계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노동개악 범죄 미화시킨 연극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노동개악이라는 현 정부가 추진한 범죄행위를 미화시킨 연극이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을 장기과제로 두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현 정부가 선행을 했다고 손뼉 칠 일인가 싶다. 파견업종을 뿌리산업까지 확대하는 건 질 나쁜 일자리를 대놓고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파견업이 확대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불법파견을 단속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고 하더니 파견업종 일자리에 취업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경제위기 담론을 퍼뜨리면서 노동자를 벼랑으로 밀어 넣을 궁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안전장치는 탄탄한 내수시장이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얘기했듯 소득 주도 경제성장으로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는 방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높아져야 한다. 국민 다수인 노동자들의 지갑이 두꺼워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탄력 있게 대응한 국가들은 내수가 안정된 나라였다. 애초부터 잘못된 노동개악은 중단하고, 노동자와 국민을 위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길 바란다.

노동개혁 시급성·중대성 강조,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놓고 정부가 기간제법을 명시적으로 포기한 것인지,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청와대의 입장만 강요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노동개혁 5대 법안 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되 근로기준법과 파견법을 포함한 나머지 4개 법안에 대해서는 신속한 통과를 위해 노동계가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것은 정부가 노동개혁 5개 법안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노동개혁 입법의 시급성과 법안 통과가 무산됐을 경우 초래될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그 절실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엽적인 쟁점을 가지고 노동개혁 법안 전체의 논의를 거부하는 야당과 노동계가 협상의 장에 나오도록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급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 나가자는 요청으로 읽힌다.

야당이 이러한 제안마저도 수용하지 않고 반론을 위한 반론만을 제기한다면 이는 노동개혁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법안도 노동개혁을 위한 법안도 모두 정쟁의 덫에 걸려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 준 국민들을 향한, 국가를 향한 책임을 통감하고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입법을 위한 대화에 임해야 한다. 국민의 여망과 대통령의 당부를 가벼이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은 논쟁을 위한 논쟁보다는 대승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년 일자리와 경제위기 극복에 집중할 때다.

정부가 먼저 반칙, 원점으로 되돌려야 대화 가능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노사정 대타협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일방적으로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 말처럼 사회적 대화는 물론 국민과의 약속은 중요하다. 그런데 과연 누가 약속을 어겼는가. 약속을 한 핵심 주체는 노·사·정이었고 먼저 반칙한 쪽은 정부였다.

정부·여당은 노사정 합의와 달리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은 누락하고 불리한 내용은 넣은 노동 관련 5대 법안을 노사정 합의 직후 발표했다. 또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임금·노동조건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을 정부가 단독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이 정도면 반칙을 넘어서 독재다.

박 대통령은 또 담화에서 기간제법을 양보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 대신 국회 처리를 요청한 파견법은 전경련·경총 같은 사용자들의 숙원 과제였다. 경영계가 로비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서 앵무새처럼 옮겨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한국노총은 정부에 최후통첩을 했다. 19일까지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대결과 선동의 정치를 중단하고 잘못된 법안과 지침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피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성실하게 협의하고 사회통합을 위해서 같이 나가자고 제안한다면 한국노총은 대화 테이블에 나설 것이다.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노동계 또한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정부에 달렸다.

기업만 절박하다는 대통령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대통령 담화의 핵심 중 하나가 노동개악 5법이다. 그중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더라도 파견법을 비롯한 4법은 반드시 통과시키라고 거듭 국회를 압박했다. 수용될 수 없는 압박정치다.

정부·여당의 파견법 개정안은 퇴물로 매도당하는 중장년층을 저임금과 차별·불안정노동으로 내모는 대표적 악법이다. 게다가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 뿌리산업을 파견 비정규직으로 채워 산업의 안정적 발전과 고용안정성까지 흔드는 악법이다.

대통령은 기간제법보다 자본의 요구가 더 높은 파견법 개악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변화된 강공책을 선택했다. 당장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판결에서 촉발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잠재우고 장기적으로는 제조업 전반에 저임금·고용유연화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담화는 더 한심하다. 현행 법정 연장노동 한도는 주당 52시간이다. 이러한 법정 한도에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더해 60시간으로 늘리고 휴일수당까지 삭감하는 것이 새누리당 법안이다. 이를 노동시간 단축 법안이라 말하는 대통령 담화는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대통령은 언제쯤 진실과 마주할 것인가. 대통령은 오로지 기업의 절박성만 거론할 뿐이다. 지긋지긋한 고통분담은 이번에도 서민들의 몫이다. 소위 노동개혁에서 기업이 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되레 각종 기업지원 방안으로 채워 놓고 노동자에게만 양보·타협·상생 운운한 대통령 담화는 뻔뻔하다.

‘청년 팔이’ 말고 진지한 노력부터


송효원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사무국장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기존 정부 주장을 재탕한 데 그쳤다. 안보·경제위기를 강조했을 뿐 구체적 대책이나 비전은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청년들의 노동조건을 나아지게 할 구체적 대책은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국정운영 계획과 그 필요성만 주장하는 식이었다. 올해는 과연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답답해하는 청년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대책은커녕 불안정노동을 확대시키는 방식을 택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이 노동개혁 법안 중 파견법을 강조했는데, 파견을 확대하고 고령자 파견을 모든 업종에서 허용하는 것은 결국 전 연령에서 불안정노동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청년들은 현재 이미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여 있지만 향후에는 안정적인 일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하고 있다. 그런 만큼 청년 입장에서도 파견 확대는 매우 부정적인 일이다. 뭐든 청년들을 위한 거라고 포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성장 시대, 경제위기 상황의 피해가 청년세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과정에 청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구체적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노동개혁 관련 법안 중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청년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개악안이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경주하기를 당부한다. 특히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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