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훈련도감에서 해고된 구식 군인들이 13개월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겨우 받은 한 달치 분량의 쌀에 겨가 대량으로 섞여 나왔다. 군인들은 난을 일으켰다. 이른바 임오군란이다. 이 사건으로 지방으로 도망갔던 명성황후와 일족들은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원조를 요청했다. 청나라 장군 위안 스카이는 3천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난을 진압한 뒤 그대로 눌러 앉았다. 청나라보다 뒤늦게 조선에 도착한 일본군은 자기네 공사관 수비를 이유로 조선에 주둔했다. 조선에 주둔한 두 나라 군대는 갑신정변·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10월14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협의를 해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답했다. 일본 자위대를 군으로 인정하고, 해외파병까지 정당화한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이달 12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해 12월23일 해상 자위대와 한국 해군이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해군이 공동훈련 실시 발표를 자제해 달라고 해상 자위대에 요구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의 배경에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희망하는 미국의 압력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북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따로 관리해 왔다. 한미일 군사동맹 시스템이 갖춰지면 이 같은 불편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엿보인다.

동북아를 손쉽게 관리하려는 미국과 군사대국을 다시 꿈꾸는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은 임오군란 시절 조선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고래 싸움에 우리를 밀어 넣고 있는 셈이다.

송기호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장)에 따르면 외교부는 정보공개청구 서면답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외교장관 공동발표문과 관련해 "양국이 교환한 각서나 서한은 없다"고 밝혔다. 양국 장관들이 정치적 약속을 했을 뿐 약속이행 등에 대한 아무런 강제규정이 없다는 얘기다. 송 변호사는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일본군 성노예 범죄행위에 대해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석이 맞는다면 한국 정부가 양국 장관의 정치적 약속을 철회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데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이어져 군사적 긴장을 강화시킬 약속에 목맬 이유가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협상을 되돌리고 일본에 전쟁범죄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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